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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의료원 환자식당 노동자를 그만 좀 착취해라

[칼럼] 하청에 재하청...임금은 떼이고, 환자 밥값은 올라가고

대구 동산의료원은 병원이 아니라 자본이다. 하기야 병원만 자본이겠는가.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모든 것이 자본이다. 교육도 자본이고 물도 공기도 모두 자본이다. 그런데 이 동산 병원자본이 지난 6월 또 다시 풀무원에 환자식당을 외주화 시켰다. 2007년에 한화리조트에 환자식당을 외주화 시켰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외주화와 더불어 환자식당 노동자 50명 중 7명만 재고용하고 나머지 43명을 지난 5월 10일 집단으로 해고시켰다. 그런데 그 풀무원이 유니토스에 다시 하청을 주면서 동산자본은 외주화에 하청에 그리고 재하청을 거듭하면서 수년 동안 동산병원에서 일하던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을 집단적으로 해고시켰다. 2007년 한화리조트 외주화 때보다 상황은 더 열악하다.

오늘날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말도 무색할 정도다. 비정규직 노동자는커녕 대다수 노동자들이 저임금 노동자로 몰리고 있다. 2007년 한화로 고용 승계된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의 기본급은 107만 원이었고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은 해고되기 전에도 임금 수준은 같았다.

현행법을 인정하고 따지더라도 지금 현재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겉으로 보면 최저임금과 비슷해 보이고 107만 원에서 4대보험비를 빼도 99만 - 100만 원 수준이니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새벽 5시부터 환자 식사를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환자식당 노동자들의 교통비 등을 제외하면 최저임금 수준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현재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임금 실태다. 한 마디로 말하면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은 각자 손에 돈 백 씩 쥐려고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장시간 노동을 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동산 병원자본은 저임금이고 장시간 노동이고 안중에 없다. 흡혈귀처럼 돈만 챙기면 그만이다. 동산 병원자본은 풀무원에 하청을 주고 풀무원은 인력 파견업체인 유니토스에 다시 하청을 주는 추악한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유니토스 소속 파견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유니토스 업체는 107만 원에서 최저임금을 뺀 나머지 돈을 챙긴다. 그나마 받던 돈 백에서 20~30만원이 깎인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병원자본은 노동자들의 임금만이 아니라 동산의료원에 누워있는 환자들의 밥 값에서도 돈을 챙긴다. 동산의료원이 환자식사 1끼 당 5190원 짜리를 풀무원과 3500원에 계약을 했으니 앉아서 1690원을 챙기는 셈이고, 동산의료원의 통상 유지병상인 900병상만 잡아도 하루에 456여만원, 한 달이면 환자식사비에서 1억여원이 넘는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 병원노조의 주장이다.

게다가 동산의료원은 계명대 것이 아니던가. 설사 병원과 학교가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얼마 안 된다. 계명대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계명대라는 학교자본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고혈을 짜 돈을 챙기고 있다. 2009년 계명대는 재단 전입금 수입예산을 171억 원으로 책정했다. 이 또한 믿을만한 수치는 안 된다. 이렇게 계명대는, 학교는 학교대로 병원은 병원대로 쌍끌이 전략으로 돈 쌓아두기에 여념이 없다. 자본에게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이나 환자들의 건강은 뒷전이다. 자본의 이익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는 착취, 수탈, 억압 같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벗어날 것인가? 학생들만 입시, 수능, 논술 같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혹자들은 외주화가 대세라고 말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대세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대세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말 그대로 전반적인 흐름이라는 것이 첫 번째 뜻이라면 두 번째 뜻은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당히 현상유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발상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할수록 그리고 평상시에도 착취의 강도를 높이고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임금을 물가, 환율, 소비 등을 통해 다시 수탈한다. 특히나 우리처럼 부동산과 사교육 시장이 막대한 규모로 커진 곳에서는 그 알량한 임금마저 수탈당하기 십상이다. 거기다가 여성노동자라는 이유로 여성들은 또 다시 차별받고 억압당하고 그 억압과 차별을 근거로 다시 저임금 노동에 몰리게 된다. 간호, 간병, 식당, 청소 등은 여자에게 적합한 일자리라는 차별적인 인식이 적용되면서 그것이 저임금의 이데올로기적인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주, 하청, 다단계 하청을 당연한 것으로 혹은 대세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것은 자본착취의 강도가 강해졌다는 뜻일 뿐이다. 그리고 착취, 수탈, 억압 사이에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자본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강고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뜻일 뿐이다. 돈 백을 손에 쥔 환자식당 여성노동자가 자식 학원비를 내준다면 그것은 그 여성노동자가 착취와 수탈의 양 고리에 걸려 있다는 뜻이고 생계보조자라는 이유로 저임금 노동시장에 내몰리며 또 다른 억압과 차별을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은 정권대로 자본은 자본대로 서로들 짬짜미를 하면서 비정규직보호법, 최저임금, 파견법, 노동시간 유연화, 노동유연화, 하청 및 재하청, 노동조합 말살 기도 등을 통해 노동시장을 피 말리는 밑바닥경쟁으로 내모는 상황이 참으로 난감하기는 하다. 이 명박 정권은 이미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해 노동시장을 시간제, 시급제로 몰아가면서 불안정 노동시장의 규모를 확대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노동 쪽의 일치된 단결이 절박하다는 사정은 공유하면서도 자본에 대한 저항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영화 <이끼> 마냥 각자가 바위에 바싹 붙어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본이 ‘이끼’가 되어 노동 쪽의 저항을 미끄러지게 하기 때문인지 집중적인 동력이 붙지 못하고 있다. 투쟁의 주체가 부재하거나 부족해서라는 인식은 누구나 다 공유하지만 자본과 국가의 양 날개 공격 앞에 무력한 것은 사실이다. 노동 전체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면 대구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동산병원자본과의 투쟁 또한 노동 전체의 상황과 유사할 터이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이번 동산 병원자본과의 투쟁은 내가 노동자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인가를 확인하는 중요한 싸움이다. 신자유주의의 발호로 인하여 반외주화 투쟁이 버겁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싸움은 아니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 파견노동자로 하청노동자로 그리고 다시 일용 노동자로 자본의 공세가 수위를 높이면 높일수록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강고해져야 한다. 동산 병원자본과의 투쟁은 그저 환자식당 여성노동자의 해고에 대한 반대 투쟁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앞서 말한 대로 자본의 극악한 착취 방식이 농도 짙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동산 병원자본과의 투쟁이 장기로 접어들고 있다.

필자는 관찰자의 입장이긴 하지만 이번 투쟁이 전국적인 사안으로 부각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 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국가와 자본의 양면 공세 속에서 이번 싸움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이면서 반외주화 투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원청 직고용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영화 <박쥐>에서 송강호가 병원 침대에 누워 피를 병 째 빨아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자본은 뱀파이어인 송강호 이상이다. 노동의 질, 노동시간, 임금, 하청 등 갖가지 방식으로 자본은 착취의 끝을 모르고 질주한다. 우리가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을 동산자본이 직접 고용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자본의 질주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은 대구에서 오로지 동산병원만이 식당을 직접 운영하지 않기 때문만이 아니다. 환자식당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번 싸움은 분명히 아웃소싱을 일삼는 자본에 대한 반신자유주의적인 투쟁이다.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을 때까지 우리가 거쳐 가야 할 산들이 많다. 그 산은 하청일 수도 있고 시간제 노동일 수도 있으며 비정규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자본의 폭주를 막을 것인가. 강물을 거슬러 알을 낳으려는 본능 때문에 시멘트 바닥에 자란 이끼에 미끄러져도 몸을 위로 던져 수십 번이나 솟구치려 하는 숭어들처럼 자본이라는 강물을 누가 거슬러 갈 것인가. 자본의 폭주기관차를 막아설 요량이 없다면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지도 말자. 자본이여, 그만큼 착취하면 됐다. 노동의 죽음은 곧 자본의 죽음이다. 동산 병원자본은 환자식당 영양실 분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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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노동자 , 이중착취 , 동산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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