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좌파통합운동의 현재

[연재](1) Syriza, Left Bloc, NPA를 중심으로

1. 좌파통합운동의 배경

2차 대전 후 30여 년에 걸친 장기호황 속에서 서구에서는 사민주의가 제도 내에 편입되어 보수 양당 혹은 우파와 사민주의당의 양당 체제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변혁세력의 입지가 좁아졌고, 무엇보다도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걸친 소연방과 동구권의 몰락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거대한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적인 좌절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인 공격에 대중운동과 좌파는 유효한 반격을 하지 못한 채 후퇴를 거듭하였다. 그동안 서구 공산당은 유로코뮤니즘으로, 사민주의당은 사회자유주의로 전향하였고, 격심해지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공격이 1990년대 말부터 대중투쟁의 귀환을 가져오자, 위축되고 고립되었던 급진/변혁좌파들이 국내외적으로 연대하여 저항과 반격에 나서고 정치적 세력화 혹은 변혁운동의 재구성과 재건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동안 선진국 내에서는 블루칼라 중심의 노동력(이들은 공산당의 전통적인 기반이었다)이 제조업의 이전에 따라 고학력과 서비스직 등 화이트칼라의 비중이 높아지는 노동의 재배치와 노동내부의 분절화와 위계화가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기왕의 노동의제와는 결이 다른 여성운동과 생태운동만이 아니라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반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 나아가 최근의 분노하는 자들Indignados의 운동과 점거Occupy 운동 등에서 보듯 전통적인 노동운동과는 다른 의제나 주체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변화된 지형 속에서 변혁좌파 세력은 어떠한 전략적 전망과 기획을 가지고 재건축되어야 하는가? 좌파통합Left Unity운동은 각국의 주변화되고 고립되고 분산되었던 변혁좌파의 이런 고민에 대한 대응 속에서 나왔다. 따라서 좌파통합운동은 변혁전략에 대한 새로운 고민 속에 무엇보다도 먼저 변혁을 포기하지 않는 다양한 좌파들이 정파운동과 종파운동의 차이를 넘어서자는 통합운동일 뿐 아니라, 여성과 생태 등 새로운 의제를 적극 수용하는 ‘넓은 당’broad party을 추구하는 기획으로, 그리고 혁명가나 활동가들의 당이 아닌 변혁적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기획으로 나타났다.1)

그러나 스코틀랜드 사회당(SSP)의 파산, 이탈리아 재건공산당(PRC-Rifondazione)의 자멸, 영국의 통합프로젝트(SA, Respect 등)의 좌절 등과 같은 사례2)는 물론 작금에 시련을 겪고 있는 NPA의 사례에서 보듯, 각국 변혁좌파들의 재건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관료화와 제도화의 위협도 항시적으로 작용하였다.

이 글의 목적은 노동자 변혁정당 건설운동이 추진되고 있는 현 시기에, 유럽 좌파통합운동 특히 그리스의 Syriza와 포르투갈의 Left Bloc(BE) 그리고 프랑스의 NPA 등의 현황과 쟁점을 살펴보고 교훈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2. 그리스: Syriza(급진좌파연합Coalition of the Radical Left)3)
2-1. 그리스의 Syriza와 다양한 좌파들


그리스 공산당KKE은 1940년부터 시작된 반나치 투쟁과 2차 대전 후 1949년까지 계속된 내전의 주역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노조와 하층민 속에 커다란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Syriza는 Synaspismos가 주축이 되어 만든 10개 조직이 모인 선거연합이고 우산정당이다. Synaspismos는 1968년 체코 침공에 반발한 KKE의 국내파가 모태가 되어 여성주의, 생태주의, 반인종주의, 반제국주의, 다원주의를 정체성으로 삼아 1989년 출발한 조직이다. 원래는 ‘좌파와 진보연합’이었는데 2004년부터는 ‘좌파운동과 환경 연합’Coalition of Left Movements and Ecology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Antarsya(전복을 위한 반자본주의 좌파연합)는 2008년 12월 학생봉기 직후 반자본주의자, 혁명가, 공산주의 좌파, 급진 환경주의자들이 모여 2009년 3월 22일 결성하였고, 모든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전선에 개입하고 다가오는 선거에 참여하며 저항과 파괴와 전복을 추구하는 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결성하였다고 밝히고 있다.4)Antarsya는 10개의 조직과 KKE 출신과 마오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포함하는 다양한 좌익경향들과 활동가들이 참여한 변혁적 세력의 정파연합이다.

KKE는 서구의 다른 공산당들과는 달리 역사적 사회주의 혹은 스탈린주의를 완강하게 옹호하여 온 독특한 대중정당이고, 따라서 KKE의 스탈린주의를 거부하고 탈퇴한 세력들이 만든 Synaspismos는 좌파유럽주의의 지향이 강하고 KKE와는 서로 깊은 불신과 대립이 있다. 또한 Antarsya는 Syriza의 제도적 편향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였지만 대중적인 영향력은 미미한 소정파 연합이다.

2-2. Syriza의 성장 배경

KKE가 은퇴한 사람들과 블루칼라 그리고 하층민에게 뿌리를 두었다면, Synaspismos는 도시의 교육받은 젊은 층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자본에게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노동자계급이라고 할 때,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자계급은 더욱더 교육을 많이 받은 화이트칼라, 사무직, 서비스직 노동자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선거로 Syriza는 젊은층과 55세 이상에서 1위를 한 것은 물론 KKE의 기반이었던 도시하층민과 공장지역에서도 KKE를 앞질렀다.5)

2000년대 들어 Synaspismos도 좀 어려웠다. 좌선회가 필요했고 그것은 2003년 반지구화운동과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에서 표현되었다. 이 운동 속에서 Synaspismos와 급진 좌파와 반자본 좌파의 정규적인 공동행동이 만들어졌고, 2004년 그리스 사회포럼의 개최와 Syriza의 창설로 이어졌다.

ND 정권이었던 2006년과 2007년 거대한 학생운동이 있었다. 대학들이 수개월간 점령되고 수만 명이 참가하는 학생총회와 수십만 명의 학생들의 행진이 전국을 휩쓸었다. 학생총회와 대학교사노조에서 급진좌파 활동가들은 공동으로 투쟁을 이끌었다. 이 투쟁들을 통하여 Syriza는 재부상하였다. 2008년 12월 15세의 학생이 경찰에게 죽자 청년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Syriza는 의회 내에서 이 투쟁을 지지한 유일한 세력이었다. 2011년 타흐리르 광장의 점거와 Occupy(점거)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자 그리스에서도 스페인의 분노하는 사람들indignados 운동을 모방하여 주로 청년층에 의해 주도되는 신타그마 광장의 대중적인 점거가 일어났다. Syriza 활동가들은 이 운동에 전력을 다하였고 Antarsya와 함께 광장에서 열리는 총회와 시위에 중요한 조직적 정치적 지원을 하였다.6)


2-3. 2012년 총선결과와 쟁점

2012년 5월과 6월의 총선에서 좌파가 단결하면 우파의 집권을 끝장낼 수 있었는데 Syriza의 ‘좌파정부’ 호소에 대하여 KKE는 좌파개량주의와는 어떠한 협력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그리고 Antarsya는 선거강령의 모호함을 이유로 협력을 거절하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두 번의 선거에서 Syriza는 16.78%->26.89%, 공산당은 8.48%->4.50%, Antarsya는 1.20%-> 0.48%를 득표했다.

KKE는 EU와 IMF 틀 내에서의 부채 협상이나 긴축안에 대한 재협상이나 점진적인 불이행 거부, EU 탈퇴, 부채의 일방적 취소, 생산수단의 사회화, 인민의 생산적 협력, 아래로부터의 노동자와 인민의 통제를 제출하였고, Antarsya는 부채협상과 양허안과 긴축조치의 즉각 종식, 부채취소와 지불정지, 유로화와 EU와의 단절, 은행과 기업의 노동자 통제하의 보상없는 국유화를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Syriza는 2012년 5월 총선에서 긴축안(양허안) 취소, 부채 재협상(지불 중지와 부채조사 후 부당한 부채의 취소), 유로 잔류를 주장했고, 6월 총선에서는 임금삭감의 (취소가 아닌) 동결, 최저임금 삭감의 취소와 월 751유로로의 회복, 급여의 긴축 이전 수준으로의 점진적인 회복, 실업수당의 회복 등으로 후퇴하였다.

2-4. 유로존 잔류를 둘러싼 논쟁

이번 선거에서 좌파들은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반긴축과 재협상을 주장하는 Syriza와 부채 거부와 유로존 탈퇴를 내세운 KKE와 Antarsya로 나뉘어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잔류파들은 유로존을 탈퇴하고 드라크마화로 돌아가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케인즈주의적인 해법이며 극심한 화폐절하가 일어나고 대부분의 연료와 생필품(식료품)을 수입하는 사정상 민중의 고통은 극심할 것이고, 수출산업의 비중이 낮기 때문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채문제는 유럽적이고 구조적이기 때문에 일국적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부채의 큰 부분을 삭감하고, 나머지 부채의 상환조건을 최적화하는 1953년 독일협정과 같은 유럽협정이 필요하며, 일자리와 생태적 발전을 위한 유럽공적은행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7)

이에 대하여 영국의 좌파학자인 Lapavitsas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유로존에 잔류하는 한 부채를 60% 이상 탕감받아도 긴축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경제는 회복될 수 없다. 그리고 탈퇴에는 자본가계급이 주도하는 채권자 주도의 탈퇴와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채무자 주도의 탈퇴가 있다. 전자는 자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을 계속 억압하는 것이고, 후자는 은행국유화와 노동자계급과 하층 자영업자를 우선시하는 진보적인 조세정책과 분배정책을 통하여 내수를 활성화하여 경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탈퇴 초기에 드라크마화가 극심하게 평가절하 되더라도 수입품이 비싸진 만큼 농산물을 비롯한 국내공급이 늘어날 것이다. 총수입과 총수출이 엇비슷하였고 은행국유화를 통한 유로화예금의 통제는 유로화를 집중함으로써 외환수요를 감당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화폐가격이 안정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로존 잔류는 긴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경제가 끊임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주도의 탈퇴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였다.8)

Antarsya처럼 부채를 거부하고 ‘진보적인 탈출’을 하여 일국적 경기회생을 노리는 것이나 Syriza처럼 일단 지불을 중지하고 재협상을 하는 것은 각각 장단점이 있고 대중의 의식수준도 고려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Syriza가 주장하는 EU 민주화 개조투쟁도 전 유럽적 연대로 전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953년 독일협정과 같은 모델은 주요국의 자본가권력이 타도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근거없는 낙관이다. 전 유럽적 전망을 갖는 해결책과 투쟁은 필요하지만 Syriza 상층부는 EU의 변혁이 아닌 EU 개량주의의 편향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2-5. 지도부의 우편향과 소수파의 대응

2012년 6월 총선 때 10,000명 정도의 조직원이었던 Syriza는 현재 3만 명을 넘었다. 2012년 11월 30부터 12월 2일까지 Syriza를 보다 통일적인 정치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총회가 열렸다. 총회 전 당 대표 치프라스를 중심으로 한 다수파는 ‘반긴축 정부’를 내세워 중도 좌파와 우파 심지어 반 우파까지의 포용9)을 염두에 둔 지역토론용 초안을 제출했고, 이에 대해 Syriza 내 좌파 3개 조직-DEA(Internationalist Workers Left), Kokkino(Red), APO(Anti-capitalist Political Group)-은 특히 KKE와 Antarsya를 포용해야 한다는 반대토론용 문건을 제출했지만 25.71%로 부결되었다. 다음은 소수파 문건의 발췌이다.

Syriza는 좌파정부에서 양허안과 모든 긴축법안의 일방적인 취소를 명백히 하였다. 그런데 어떤 지도급 인사들은 더 이상 긴축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현재수준에서의 임금과 연금의 동결을 얘기한다. Syriza는 부채 조사, 전부가 아닌 부채의 큰 부분의 취소, 부채 지불정지, 대부자와의 협상에 의한 부채의 자발적 연기,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제가 좋아졌을 때에 나머지 부채의 재지불이라는 모순적이고 복잡한 접근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모든 조치들은 부채 이슈에 대한 일반적인 감독을 유럽적 수준에 남겨놓았다.

하지만 좌파정부가 첫날부터 매년 110억 유로나 되는 국내외의 부채를 계속 지불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공적자금을 쥐어짜고 매년 새로운 긴축안을 시행할 필요로 이끌 것이다. 해외금융의 지원이 없다면 매년 공적 지출의 50% 이상인 대부 상환은 불가능하다. 트로이카가 긴축을 뒤엎을 좌파정부를 계속 지원하지 않을 것이고, 지불종식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적대적인 세력을 중립화시키고 이러한 행동을 지지할 사회적 세력을 활성화하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초안은 축적된 부에 대하여는 과세를 제안하고 있지만 법인세에 대하여는 모호하다. 이윤에 대한 45% 과세라는 선거공약은 회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우리가 좌파정부의 성격을 단지 과도적이고 사회주의를 위한 일보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은행과 사유화된 공공기업의 공적 민주적 노동자 통제하의 국유화. 이것은 금융자원의 확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친노동자 대중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방어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이다. 이것은 다시 주장하고 일관되게 밀고 나아가야 할 선거공약의 하나였다. 이 프로그램은 필요하다면 시장의 규칙이나 규제 그리고 자유무역과 경쟁에 관한 유럽 조약을 무시하고 대주주에 대한 보상 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공적자금의 부족을 고려할 때 주주로부터 주식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회적으로 불공평하다. 만약 좌파정부가 즉각적으로 대량의 국유화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친노동자 정책을 수행하고 자본가 세력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좌파정부 제안은 KKE, Antarsya, 다른 좌파세력들에 대한 Syriza의 체계적인 제안과 함께 좌파연합정책에 기초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다른 정치세력 지도부의 부정적인 반응 때문에 변화되어서는 안된다.10)


지난 총선에서 ‘좌파정부’라는 선거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선거강령의 옳고 그름이나 개량적 입장과 변혁적 입장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이라기보다는 정세에 대한 대안의 판단문제라고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Syriza와 KKE, Antarsya 사이에 존재해 온 뿌리깊은 감정과 불신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Syriza에 대해 개량적 편향의 유무의 판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점은, 서방세계에서 Syriza가 급진좌파세력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PASOK이라는 사민주의 세력을 뛰어넘어 혹은 우파와 사민주의의 양당체제를 깨고 대중의 불만과 급진화를 수렴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변혁세력은 Syriza의 성공을 가능케 한 계급지형의 변화와 급진/변혁좌파의 변신의 기획인 새로운 좌파통합운동으로서의 Syriza와 Synaspismos의 기획에 대하여 천착할 필요가 있다.

3. 포르투갈: Left Bloc(Bloco de Esquerda, BE)
3-1. Left Bloc의 성장과 배경


Left Bloc은 1999년 3월 UDP(People's Democratic Union), PSR(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PXXI(Politics XXI)의 세 조직이 합동하여 출범하였다. UDP는 중소분쟁의 영향으로 1964년 공산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마오주의 경향의 조직이고, PSR은 SUB(United Soldiers will Win)가 1979년 전환한 조직이고, Politics XXI은 1991년 공산당에서 축출된 그룹들이 만든 조직이다.11) Left Bloc은 총선에서 1999-2.4%, 2005-6.4%, 2009-9.8%, 2011-5.2%를 얻었고 현재 8명의 의원이 있다. 유럽의회선거에서는 1999-1.8%, 2004-4.8%, 2009-10.7%를 득표하였고 3명의 의원이 있다.

30년 동안 군부독재 치하에 있었던 포르투갈은 1974년 4월 반독재 좌파 군부 쿠데타가 있었고, 1975년 11월까지 준혁명적 상황이었다. 이 기간 동안 군부의 통치는 유지되었지만 50년만의 민주적 투표로 앙골라나 모잠비크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모든 식민지가 청산되고 1976년 선거를 통하여 사회당이 집권하였다. 1974년 메이데이에는 150만 명이 참석하였고, 이 기간 동안 다양한 군소 좌파들도 출현하였다. 공산당은 반독재 투쟁을 강력하게 추진하여온 세력이었고 그 위신으로 의회(20%)에 진출하고 새로 결성된 총노총인 CGTP를 장악할 수 있었다. 한편 포르투갈은 보수적인 가톨릭의 영향이 큰 나라이다.

대부분의 좌파와 여성운동, 그리고 공산당과 사회당의 일부까지 가세한 낙태비범죄화운동은 1998년 국민투표에서 50.07%와 48.28%의 차이로 패배하였다.12) 이 운동의 패배를 반성하면서 UDP의 총서기 Luís Fazenda가 단순한 선거연합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제안하였다. 여기에 신망있는 좌파 지식인들이 중재하고 PSR과 PXXI의 대표들이 호응하여, 정기적인 토론을 시작하였다. 나중에 보다 넓은 새로운 좌파강령을 만들기 위해 세 조직의 조직원들과 독립활동가들도 참여하였고, 정치협정이 이루어지고 나서 선거연합이나 동맹이 아닌 신당을 만들기로 하였다. 신당을 만들기로 하자, 좌파 노조활동가들이나 공장위원회와 여성주의자, 생태주의자 등 사회운동의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다양한 정치적 전통들, 공산당, 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적 경향과 독립적인 사회운동가들을 모았다. … 역사적이거나 강령적인 동질성과 이데올로기 우선적인 응집이 아니라 현 단계 전 지구적인 정치 상황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역할, 우리들의 행동을 만들어낼 정치적 대결의 기초 위에 건설되었다. 수세적 상황에서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전통을 갖는 사람들을 재편하기 위해 구체적인 정치적 제안을 정식화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이것이 역사적 입장의 강령을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개입의 강령을 토론하는 것부터 시작한 이유였다. …

총회는 2년마다 열리고, 20명 이상의 그룹은 정치방침안을 총회에 낼 수 있고, 각 입장의 대표자 1명씩과 몇 명의 원로들로 이루어진 총회조직위원회가 당내 토론을 보장하고, 총회에는 각 입장에 따른 남녀 동수로 된 전국위원(전국지도부) 후보명단이 제출된다. 80명의 전국지도부는 각 입장의 총회 득표수에 따라 선출된다. … Left Bloc은 처음부터 참여조직의 유지와 정치행동을 허용하기로 했고, 지금까지 창립조직들 간의 융합은 없다. 2004년에야 각 조직은 독자적인 사이트와 교육행동을 갖는 정치모임political associations으로 바뀌었다. 지도부의 공동 헤게모니와 정치적 대응과 대결은 창립초기 수백 명이었던 조직원이 2011년에 9,000명에 달하게 했다.13)


3-2. Left Bloc의 최근 논쟁

포르투갈의 정치지형을 보면 1995~2002년은 SP(사회당)가 집권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인 사유화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1999년 EU 가입과 보스니아와 코소보 파병 등 친미, 친NATO 정책을 추진하였다. 2002~2004~2005년은 SDP(사민당)와 우파인 PP(인민당)의 연정이었고, 2005~2011년엔 SP가 집권하다가 2010년 IMF와 EU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2011년부터는 다시 SDP와 CDS-PP(사회중도인민당Social Centre-People’s Party)가 권력을 잡았지만 1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2011년 9.15 시위나 300만 명이 나온 2013년 3.2 시위로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가 붕괴할 경우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Left Bloc은 ‘좌파정부’를 제출하고 있다. 현재 Left Bloc은 여론조사에서 7.5%의 지지를 얻고 있고, 공산당PCP이 이끄는 민주통일연합CDU을 합쳐도 17%이다. SP는 32.1%이고, 공동정부의 여당인 SDP는 26.3%, CDS-PP는 7.9%이다.14)

SP 지도부는 구제금융 때 트로이카가 강요하는 긴축 양허안을 수락한 바 있고, SDP는 SP의 협력을 얻으려고 하고 있다. SP는 최근 PCP와 Left Bloc과 함께 정부 불신임안을 공조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보너스 삭감안에 좌파들과 함께 반대하기도 했다.

‘트로이카의 긴축과 단절하는 좌파정부’라는 공산당의 5개 입장은 국내 수요를 진작하고 중소기업의 희생과 경쟁을 줄이는 점까지 포함하여 Left Bloc과 비슷하지만, ‘광범위한 좌파’ 혹은 ‘모던 좌파’라는 Left Bloc의 개념은 거부한다. 공산당은 이번 Left Bloc 총회에 참석하여 “포르투갈에 빈곤과 기아를 가져오는 정책과 단절할 민주 세력과 부문과 개인들이 참여하는 좌파적이고 애국적인 정부의 수립을 방어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 11월 16일 Left Bloc 총회가 열렸다. 현 사민당의 코엘호 정부가 붕괴할 경우 좌파의 대안을 둘러싸고 공산당과 협력하는 좌파정부안을 낸 A안과 사회당이 없는 좌파정부는 불가능하다며 사회당에 대한 과감한 양보를 통한 연대를 제안하는 B안이 대립했고, A안이 80%의 지지를 얻었다. 전국지도부는 두 안의 지지율에 따라 61명과 19명이 선출되었다.

A안과 B안 모두 양허안(긴축을 강요하는 재정협약) 거부, 부채탕감, 불법적 부채 취소, 국가가 지원한 은행 국유화, 공공 서비스와 전략적 산업의 재국유화, 진보적인 조세정책은 물론, 부채문제 해결을 위한 유로 본드 창설, 유럽 내 조세천국 일소, 일자리 창출 등을 지원하도록 유럽중앙은행의 개조, 유럽 사회보장의 최소기준과 임금 증가를 위한 정책협약 등 좌파유럽주의의 입장에서 유럽적 해결을 중시한다는 점은 같다. 이 외에 A안은 지방선거를 위한 좌파강령을 개방하고 민주주의와 공적 회계에 대한 훈련, 권력남용과 헌법의 파괴에 대한 투쟁 위에서 만들어지는 지방정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강조하였고, B안은 복지국가의 방어를 평등한 기회의 보장과 사회의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한 핵심적 요소로 강조하였다.15)

일단 두 안이 모두 Syriza처럼 좌파유럽주의의 입장에서 부채의 전면취소나 유로존 탈퇴가 아닌 재협상과 불법적 부채의 취소를 주장하는 점이나, EU와 ECB의 개조를 통하여 전 유럽적 해결을 찾자는 주장은 논외로 하자. 그러나 반자본 좌파라면 심각한 경제위기와 광범한 대중이 투쟁에 나서고 있는 현 시기를 변혁적 입장에서 생각하고, SP가 없으면 가능하지도 않는 좌파정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사회자유주의 세력인 SP까지를 배제하는 전선을 치고 PCP와 Left Bloc이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투쟁하는 것이 올바를 것인데도, 그리고 9.15투쟁이나 3.2투쟁은 Left Bloc이 만들거나 조직한 투쟁도 아니고 그들의 밖에서 터져 나온 투쟁인데도, 이 투쟁을 키울 생각보다는 반긴축을 내세워 자본의 위기관리나 해 줄 공동정부 구성에 급급하다고 할 수 있다. (계속)


* 주

1) Callinicos처럼 이런 기획을 역사적 배경을 고려않고 사회개량주의라고 폄하하는 것은 독선일 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Alex Callinicos, ‘The Politics of the rising European left” (2012, May 19) at http://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28461.
2) 유럽 급진/좌파당들의 사례는 Daniel Bensaïd, Alda Sousa, Alan Thornett and others, New Parties of the Left: experiences from Europe, Resistance Books, London, 2011을 참고하라.
3) 그리스의 투쟁 그리고 좌파들의 대응과 논쟁에 대하여는 박석삼, “그리스 경제위기와 투쟁을 둘러싼 쟁점”, 『진보전략 창간 기획호』 (2012.9.), 타흐리르, pp. 33-86을 참조하라.
4) Antarsya, http://www.Antarsya.gr/node/8.
5) Paul Kellogg, “Greece in the eye of the storm (the Greek left, SYRIZA and the limits of the concept of ‘left reformism’)” (November 18, 2012) at http://links.org.au/node/3109.
6) Petrou, P. “The making of SYRIZA” (2012, June 11) at http://socialistworker.org/2012/06/11/the-making-of-syriza, Petrou는 Syriza에 참여하고 있는 DEA(International Workers Left)의 지도부이다.
7) Jody Betzien, Sibylle Kaczorek, Yiannis Bournous, “The historic responsibility of the left in Greece” (3 March 2013)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907, Yiannis Bournous는 Synaspismos의 중앙정치위원이고 유럽좌파당의 집행위원이다.
8) Costas Lapavitsas, Annina Kaltenbrunner et al., Breaking Up? “A Route Out of the Eurozone Crisis” (Research on Money and Finance report, November 2011) pp. 61-89.
9) 치프라스는 이것을 “좌파와 우파의 전통적인 구분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고, 반긴축 세력과 친긴축 세력의 구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말로 정당화하고 있다. Nickolas Skoufoglou, “Syriza’s strategy further consolidated”-Stathakis’s interview with “Vima” (7 March 2013)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915.
10) Antonis Davanellos, Giorgos Sapounas, Panos Kosmas, Petros Psareas, Sotiris Martalis, Vasilis Papakostas, “Debating the future of Greece” (24 March 2013)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931.
11) Ralph Blake, “What’s Behind the LeftBloc’s Success?-A view from Scotland” (30 November 2009)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1762. 1974년 4월 직전에 만들어져 군부와의 광범위한 계급동맹이라는 공산당의 전략에 반대하여 노동자와 병사의 독립적 조직을 옹호하였던 제4인터 가맹조직인 LCI가 SUB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Alda Sousa, Jorge Costa, “Starting anew with the Left Bloc” (4 April 2012) at http://www.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2560.
12) 1886년에 만들어진 포르투갈 형법에서 낙태죄는 2~8년의 징역형에 해당되었고, 민주화 이후 저항이 시작되었다. 1979년 ‘전국 낙태와 피임 운동’이 만들어지고, 1984년에는 “임신 12주 이내에 산모의 건강이 실질적인 위험에 있거나 24주 이내에 태아가 기형일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수정안이 사회당에 의해 통과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경우는 여전히 3년 이내의 징역형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국민투표는 2007년에 이루어졌다.
13) Alda Sousa, Jorge Costa, 앞의 글. “Left Bloc은 의회 진출과 노동자, 학생, 지식인들과의 긴밀한 접촉을 연계시킬 수 있었다. 특히 매년 여름에 해변에서 정치집회를 개최하는데 2010년에는 20,000명이 모였다. Left Bloc은 더 이상 단지 시위정당protest party이 아니라 대안을 제출하는 당으로 보여지고 있다.” 같은 곳.
14) Left Bloc은 2011년 대선에서 사회당 내의 경선에서 패배한 독립좌파인 Manuel Alegre를 지지했고, 총선에서는 득표율이 9.8%에서 5.2%로 떨어지고 의석도 절반인 8석으로 줄었다.
15) Dick Nichols, “Portugal: Left Bloc debates call for a left government” (November 18, 2012) at Links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맑스꼬뮤날레(5/10~5/12 서강대)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필자의 양해를 얻어 미리 게재한다. 발표는 5/12(일) 10:00 서강대 다산관 D502호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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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희

    유성기업 너무하네요 사람이 너무잔인하네요 사람이 살려고하는ㄷ 도와주지는 못하고 자기네 생각만하고 폭력이나 쓰고 너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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