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48시간 연장’의 결정적 키는 쇠고기와 자동차 협상으로 알려 지고 있다.
31일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시대통령이 자동차와 관련해 양보안을 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오는 5월 국제수역기구(OIE)에서 결론이 나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협상단에 전권을 위임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막판 딜브레이커 역할을 했던 쇠고기와 자동차 협상에서 파열구가 생겼으니 이후 쟁점들은 정리되는 그림이다. 이 정부 관계자는 4월 2일 새벽을 타결 선언 시점으로 예상했다.
쇠고기와 자동차는 한미FTA 협상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는 ‘국민의 건강권’, '먹거리 안전성' 보다는 미국 축산업계의 이익이 더 큰 목적이었다. 이는 자동차 협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세 철폐에 세제개편 까지
지난 달 31일 감자 등 민감농산물 관세철폐에서 일부 미국에게 양보하고, 쇠고기에 대해서도 ‘5월 국제수역기구(OIE) 총회 결과를 보고 검역절차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을 협정 발표 시 포함하겠다는 양보안으로 마지막 카드를 꺼냈던 한국 협상단.
그러나 결국 자동차 분과 관세 즉시 철폐를 얻어내지 못하면서 48시간의 협상 연장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협상단은 현재 2.5% 수준인 미국의 자동차 관세를 즉시 없애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근거해, 자동차 관세가 즉시 철폐될 경우, 1년에 수출이 8억 달러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한국의 2대 수출 품목이고 미국에 대한 수출 품목 중에서는 비중이 가장 큰 상품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87억5천만 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의 20%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 자동차에는 8%의 관세가 적용되고, 수입량은 5천 대 규모이다. 미국 협상단은 이를 “무역 불균형”으로 지적하며 배기량 기준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한국의 자동차 세제 때문이라는 주장하고 있다.
협상 막판까지도 미국 협상단은 한국의 자동차 관세 폐지는 물론 세제 개편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상호호혜는 착각이다
이번 장관급 협상에서 미 측은 승용차(관세 2.5%)는 3년 내, 픽업트럭(25%)은 10년 내 관세를 철폐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곧바로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 의회의 반대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미국 측이 '자동차'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배경에는 GM과 포드 등등과 같은 자국 자동차 업체들의 경영 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미국내 분위기는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들 업체의 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최고경영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의견을 나눌 정도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양국의 요건이 있다.
결국 한미FTA 협상을 통해, 미국 측은 그들이 주장해 온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고, 더불어 침체된 미국 자동차 산업의 회생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 정부가 미국식 FTA의 전형적 특성으로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 '상호호혜'를 이야기 해 왔지만 사실상 자동차 협상에 있어서 만큼은, 미국은 자국 시장 보호를 위해, 자국의 이해를 철저히 관철시키는 협상을 진행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달 2일 칼레빈 미 의회 자동차 모임(오토 코커스) 공동의장을 비롯한 美 상하원 중진의원 15명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앞으로 공개서한을 보내, 한미 FTA 협상을 통해 한국시장 내 미국차 수량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미국 자동차 관세인하와 연계토록 촉구했다.
또한 최근 개최된 한미FTA 청문회에서 포드의 스테판 비건 국제담당 부사장은 한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과 자국 시장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지난 달 28일(현지시각)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미 민주당 중진 4명은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미국 정부가 자동차 부문 협상에서 충분한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한 데 대해 큰 실망감'을 표시하고, '협상노선의 변경을 촉구하는 서한'을 다시 보냈다.
이런 흐름은 '자동차'가 결국 '한미FTA 협상'의 '딜브레이커'가 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측의 입장이다. 관세율 측면에서 본다면 승용차는 한국 8%, 미국이 2.5% 이지만 상용차의 경우 한국은 10% 미국의 25%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EU가 승용차 10%, 상용차 22%를 유지하는 것에 비해 한국의 관세율이 주요 선진국 관세율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닌 상황이다.
사실상 관세 철폐가 핵심인 것이 아니라 관세 철폐와 더불어 세제개편을 포함한 한국의 자동차 시장 완전 개방이 이들의 목표인 셈이다.
남의 나라 세제문제를 왜 건드리나
협상 막판까지도 미국 협상단은 한국의 자동차관련 세제를 문제 삼고 있다. 무역장벽도 아니고, 한 나라의 세제 정책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약제비 적정화 방안과 같은 국내 정책을 한미FTA 협상과 연계시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남의 나라 정책에 개입해 자국의 이해를 관철 시키겠다고 강수를 두고 있고, 심지어 이런 주장과 요구가 협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 대형수입차에 대한 배기량 기준의 누진적 자동차 세제를 가지고 있다. 한 예로 자동차 관련 정부의 세금 수입은 2004년 말 현재 약 24조원으로 총 조세의 15.7%를 차지할 만큼 적지 않은 규모이다. 미국 측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 지방세금 수입 감소를 비롯해 국내 조세체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해 진다.
또한 배기량 기준으로 세재를 책정해 놓은 것은 세금 제도의 측면도 있지만, 대기 오염 방지책으로의 환경 규제 '가이드 라인'의 의미도 갖고 있다.그럼에도 미국 측의 요구가 반영돼 국내 정책이 바뀐다면, 한국인들의 '환경권'과 '건강권'은 더욱 침해 당할 수밖에 없다.
계속된 서한에서 드러나듯 미국 의회의 기류를 고려할 때, 설령 타결 선언을 한다해도 의회 검토 기간 중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FTA 협상 막판, 자동차 분과가 보여주는 결과는 '상호호혜'가 아니라 '자국 시장의 보호와 자본의 이해 관철'이라는 점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의 양보가 무엇이고, 한국 협상단이 어떤 식으로 합의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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