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미국에 상납하고 말았다

[기고] 신자유주의 첨단을 달리는 노무현정권

허세욱 노동자가 온 몸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라는 기름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이라는 불을 질러댔다. 노무현 대통령 입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왔고 기다렸다는 듯이 농업, 서비스업 등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통 신자유주의자였다. 한덕수가 경제분야 신자유주의자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온 몸으로 지켜낸 신자유주의자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김영삼 정권이 뭐 쥐뿔 나게 잘났다고 동아시아국가들 중에서 제일 먼저 OECD에 가입하면서 시작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완성시킨 미친 짓이었다. 미국이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방법은 늘 그랬다. 닉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다른 나라를 제국주의적으로 간섭할 생각이 없다. 다만 미국식 생활방식을 보급하고 싶을 뿐이다”. 부시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한국사회에 가르쳐주고 싶을 뿐이지 한국사회 내정에 간섭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라이스 미 국무방관은 미국이 보여주는 정치적 의지만큼 한국도 그러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는가? 제국주의를 아메리카적인 생활방식과 바꿔치기한 닉슨이나 정치적 의지를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바꿔치기한 부시나 매한가지다.

1960년대에 OECD 미국 측 위원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교육이 지독하게 전제적이라고 비판한 것을 상기한다면 미국의 내정간섭은 말 그대로 가히 글로벌한 것이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서 투자자 - 국가간 소송제도(ISD)가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완화, 교육 ․ 복지부문 후퇴, 공공서비스의 소멸 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 교육 ․ 복지부문 축소는 작은 정부와 같은 개념이다. 우리의 경우 교육 ․ 복지 부문은 GNP 대비 교육재정 확보부터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축소라는 단어조차 사용할 수 없다. 복지부문은 복지국가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할 얘기도 없을 뿐더러 노무현 정권 들어서서 정권의 홍보와는 달리 복지부문은 오히려 축소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엇보다 민영화에서 시작해 국내외 자본에게 유리한 각종 규제완화를 거쳐 마침내 사회를 광기어린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서서히 불을 댕기던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흐름이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서 각 분야에 걸친 각종 제도들을 통해 유독 종합선물세트로 준비되고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그 종합선물세트를 미국에게 상납하는 미친 행동으로 장렬하게 마감되었다는데 있다.

국철을 구조조정한 김대중 정권이 일본의 나카소네 정권이라면 노무현 정권은 3조3천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의 우정국을 민영화하여 미국에 헌납한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과 닮아 있다. 물, 전기, 가스, KTX, 새마을호등 기간산업의 모든 부분을 외주위탁을 통해 민영화한 노무현 정권은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완화’한 공정거래법 등을 통과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과감하게 국제적인 규제‘완화’에 나섰다.

배기가스량 의무기준을 ‘완화’해 미국 자동차 숨길을 터주고 관세‘완화’가 아니라 더 나아가 ‘철폐’를 통해 미국 섬유업체의 살 길을 도모해 주며 스크린쿼터를 ‘완화’해 한국영화시장을 죽사발로 만들었다. 노무현 정권은 개방과 경쟁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대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국내외 규제완화 조치들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앞당기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을 따름이다. 노무현 정권이 함구령까지 내리며 필사적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 타결에 온 몸을 바쳐 국민들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경쟁을 통한 선진화가 아니라 민중들의 구조조정과 퇴출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왜곡된 열망이었다.

외주, 위탁, 민영화, 규제‘완화’ 등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수놓는 전형적인 언어들이다. 노무현 정권이 세계화/지구화를 신자유주의와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력은 그냥 넘어간다 손치더라도,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을 구조개혁으로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무지한 사고력 또한 그냥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부시 앞에서 쇼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 금융자본시장을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투기자본에 넘겨주고 그것도 모자라 투자자 - 국가간 소송제도를 통해 미구에 한국경제를 뒤흔들 투기자본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준 미친 짓 앞에서는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에서 실익을 더 챙기고 더 뺏기고 하는 양적인 것은 1598개 품목 섬유 중 200여 개만 즉시 철폐한 효과, 쌀 개방 제외 효과 이외에 한국이 얻어낸 실익은 없다. 미국의 쭉정이 섬유시장과 민자유치사업을 빅딜했을 때 중요한 것은 두 항의 양적인 교환이나 관세인하 혹은 철폐같은 것이 아니라 경쟁력 제고의 미명 하에 민영화 사업을 미국의 기업들의 손에 안겨주는 수준으로까지 민영화, 규제완화를 글로벌화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권은 국내적으로 출자총액제한제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서비스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종합대책, 401K 제도 등으로 이미 멍석을 다 깔아주었다. 국민국가 수준에서의 구조조정도 모자라 글로벌한 수준에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 이것이 노무현 정권이 그토록 중국의 추격을 두려워해 감행한 개방이라는 도박의 본질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내가 결정하겠다는 오만으로 나카소네 내각도, 고이즈미내각도 초월한, 말 그대로 지구화의 첨단을 달린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대국민담화에서 그토록 주장했던 개방과 경쟁력은 신자유주의라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매트릭스의 구성요소였을 뿐이다. 프랑스에서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재임 시절(1974-81) 프랑스 언론에서 공공서비스라는 개념이 사라졌다고 말한 폴 비릴리오의 말에 주목하자. 프랑스에 비해, 일본에 비해 너무도 때가 늦어 노무현 정권은 아쉬울지 모르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이제 한국사회에서도 공공서비스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다.

기간산업, 공기업 및 사기업, 금융권 구조조정을 거쳐 이제는 농업과 서비스업 등 한국사회의 말단부에까지 구조조정의 광풍이 몰아칠 터이니 말이다. 프랑스의 공공서비스를 순식간에 실종시킨 신자유주의라는 고질라는 수십 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한국사회에도 거대한 발자국을 디디고 말았다. 1979년 미국에 의한 일본의 금융시장 폭격이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화려하게 종결된 느낌이다. 미국의 이라크침공이 군사적인 것이었다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은 14개월에 걸친 경제적인 침공이다. 선진경영비법 전수를 빌미로 한 명백한 침공이었던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후세에게는 파국이요 지금 이 땅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국치인 이유는 그것이 협정이 아니라 주권을 팔아먹는 조약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이득재 님은 대구카톨릭대 교수로, 본 지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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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국본짱

    득보다 실이 많은 FTA!! 아무 준비없이 내뱉은 노무현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코쟁이들의 농락속에서 아둥바둥 살겠구만,,,ㅡㅡ;;

  • 지나가다

    참세상조차 FTA 관련 기사를 민중적, 노동계급적인 관점을 버리고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제목으로 뽑은 것에 대해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설마 '대한민국'을 위해서 혹은 '한민족'을 위해서 FTA 반대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민족주의자들 비판하는 거에 앞장서기 전에, 제발 먼저 툭툭 드러나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부터 반성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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