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한목소리 ‘철저 검증’... 무게감은 제각각

反FTA,“무효화 전개”... 우리당, “체결 이후 입장 밝히겠다”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되자마자 정부의 협상 내용 은폐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정부가 협정문 한글 번역본이 이미 존재함에도 국회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은 협정문이 공개되자 한목소리로 ‘향후 협상내용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도 정치권 내 각 세력들의 태도는 미묘하게 엇갈렸다.

한미FTA반대시국회의, “협상 무효화 위한 범국민적 운동 전개할 것”

‘졸속협상 중단’ 입장을 보여 온 반대진영은 일제히 정부를 비판하며, 철저한 검증작업 통해 정부의 책임을 묻고 한미FTA 협상을 무효화시키겠다는 태세다.

민주노동당 의원단 및 천정배 민생정치모임 의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국회의원 57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미FTA반대비상시국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그동안 정부가 대대적으로 선전해 온 협상결과가 실제 협정문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드러나 정부의 거짓과 사실은폐 의혹이 점점 분명해 지고 있다”며 “도대체 졸속 그리고 반민주적 태도로 한미FTA를 추진하는 정부가 과연 누구의 정부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의 협정문 늑장 공개와 관련해 “정부는 정보공개를 미룬 채 오직 일방적 홍보로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해 왔다”며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 사안에 대해 최종서명까지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남겨두고 제대로 된 평가와 검증절차를 거치지 못하도록 한 정부의 의도적 늑장 공개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상시국회의는 이어 “한미FTA 협상의 내용을 철저하게 평가하고 검증해 낼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협상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분명한 책임추궁과 협상 무효화를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상시국회의는 자체적인 워크샵 개최, 종합검토보고서 발간 작업과 함께 6월 임시국회 중에 국회 차원의 청문회 및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찬성여론 조장 위해 국회와 국민 철저히 기만해"

비상시국회의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와 관련한 협정내용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10년에 단 한번만 사용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설명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세이프가드를 이렇게 제한해서는 실효성이 없다. 한마디로 정부는 무늬만 세이프가드인 것을 무슨 큰 것이나 얻은 것처럼 과장해서 홍보했을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정부가 한미FTA 협상의 주요 성과로 자찬해 온 개성공단 역외가공 지정과 관련해 “역외가공지역을 지정할 때 환경과 노동 기준을 국제규범에 따르도록 한 단서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밝히지 않았다”며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사실상 ‘국제규범’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오늘부터 한미FTA협정문의 독소조항을 면밀히 검토, 분석해 한미FTA 실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하겠다”며 “오늘은 문서가 공개된 날이 아니라, 망국적 한미 FTA 체결 중단 국민운동이 힘차게 새 출발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천정배 민생정치모임 의원 역시 관세혜택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한 ‘스냅 백’, 신속분쟁처리절차 조항 등의 독소조항을 지적하며 “정부가 그동안 한미FTA 찬성여론을 조장하기 위해 국회와 국민을 철저히 기만하였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침해하는 협상내용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이러한 협상결과는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우리․한나라․중도개혁, 검증작업 강조하며 ‘눈치보기’ 지속

한편,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중도개혁통합신당, 민주당 등은 명확한 입장을 내기보다 검증작업을 강조하며, 일단 여론의 눈치를 살피자는 분위기다. 특히 이들 4당 중 민주당만이 국회차원의 검증 작업을 병행하겠다고 밝혔을 뿐 나머지 3당은 국회 차원의 검증 작업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갔다.

최인기 민주당 한미FTA대책특위 위원장은 “정부가 협상결과를 스스로 ‘A플러스’라고 선전한 것은 과대광고였다고 볼 수 있다”며 “정부는 협정과 관련된 숨어있는 자료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공개하고 손익계산을 다시 하여 피해 문제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시민사회는 물론 민간전문가 자문단과 함께 독소조항 등 분야별 평가작업과 철저한 검증작업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며 “향후 각 상임위별 청문회 개최 및 국정조사를 추진하여 국회차원의 검증작업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당, “협정 체결 이후 우리당 입장 밝히겠다”

서혜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한글본 협정문이 공개된 만큼 협상 결과가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지 차분하면서도 철저히 검증해 나가야 한다”며 “그런 다음에 비준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 대변인은 “오는 6월 중순 쯤 평가위원회 전체 활동과 평가 보고서를 의원총회에 보고할 예정”이라며 “6월 30일 양국간에 협정이 체결되면 평가 보고서를 토대로 우리당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 차원의 검증 작업이 끝나더라도 협상 공식 체결 전까지는 한미FTA에 대한 당의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얘기다.

한나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 역시 정부의 주장과 달리 독소조항이 속속 밝혀지자 철저한 검증을 천명하는 정도에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양형일 중도개혁통합신당 대변인은 “그동안 있었던 협정문 미공개로 인한 논란과 억측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협정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공공과 전문가 집단과 공동으로 철저하게 검증토록 하겠다”고 검증작업을 강조하는 수준의 짧은 논평을 내놓았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도 “정부가 한미 FTA 협정문을 국회에 공개할 당시 이미 한글판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며 “한나라당은 한미 FTA 협정문이 과연 국익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하나하나 철저히 따져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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