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지적재산권공대위, 민주노동당은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의약품 지적재산권 분야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허가 특허 연계 조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미FTA 협상에 반영된 ‘허가-특허 연계’ 조항은 미국에서도 신통상정책을 통해 FTA에서 ‘삭제’를 요구했던 독소조항 중 하나이다.
'허가-특허 연계'와 관련해 당연히 챙기고 받았어야 할 내용을 미국이 받으라 하는데도 한국 정부가 단호히 거절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받지 않았다’며 자랑스럽게 선전했다는 것. ‘허가-특허 연계’로 후발의약품의 허가가 불과 '9개월' 지연될 것이라는 정부의 보고도 근거가 없다는 것 등등.
지적재산권 공대위 대표인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는 “(허가-특허 연계 조항 도입은) 정부가 제도의 이해 수준도 부족하고, 내용을 잘 몰라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것과 거부할 것 조차 구분하지 못해, 엉뚱한 결과를 초래 했다”고 주장했다.
허가-특허 연계.. 무슨 내용인가
현재 한국은 식양청과 특허청이 분리돼 있다. 식약청에서 의약품의 안전성, 유효성 심사 후 시판하고 특허가 있으면 제 3자에 대한 시판 허가를 금지하는 역할을 하고, 특허청은 특허 출원 심사 후 등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는 특허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식약청이 제 3자의 복제약 허가를 못하게 하는 제도이다. 사실상 특허권자에게는 유리한 내용이지만, 복제약을 판매하는 제네릭 제약사들에게는 불리한 내용이다.
한미FTA 협정문 제18.9조(특정 규제제품과 관련된 조치) 제4항이 바로 ‘허가-특허 연계’ 조항에 대한 명문 규정이다.
당사국이 의약품의 시판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안전성 또는 유효성 정보를 원래 제출한 인 이외의 인이 그러한 정보 또는 당사국의 영역 또는 다른 영역에서의 이전 시판승인의 증거와 같이 이전에 승인된 제품의 안전성 또는 유효성 정보의 증거에 의존하도록 허용하는 경우, 그 당사국은,
가. 제품 또는 그 승인된 사용방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승인당국에 통보된 특허존속기간 동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하여 시판승인을 요청하는 모든 다른 인의 신원을 특허권자가 통보받도록 규정한다. 그리고
나. 제품 또는 그 승인된 사용방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승인당국에 통보된 특허존속기간 동안 (during the term of a patent) 특허권자의 동의 또는 묵인 없이 다른 인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판승인 절차에서의 조치를 이행한다.
출원일로부터 20년 동안 특허권 존속기간이 보장된다. 연계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연계되는 특허의 범위는 의약품(제품) 또는 적응증(그 승인된 사용방법)을 권리 범위로 한다(covering)고 의약품 허가 당국에 통보된 특허로 정하고 있다. 물론 제네릭 생산업자가 특허권자에게 동의를 받아오거나 특허권자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묵인’의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 돼, 제네릭(복제약)에 대한 시판이 허가될 수 있다.
협정문에 근거할 경우, 특허권자는 자신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법원의 확정 판결을 최대한 늦게 나오도록, 1심에서 지더라도 항소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이어가며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법원 판결에서 질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버는 만큼 자신의 권리와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법률상의 허가-특허 연계를 제한하는 경우는 △특허정보가 없는 경우 △ 특허기간이 만료된 경우 △특허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으나 제네릭 제약사가 특허 만료 후 시판 조건으로 신청하는 경우 △특허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으나 해당 특허가 무효이거나 비침해임을 다투는 경우 등 4가지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4번째(비침해임을 다투는) 경우, 특허권자에게 통보하고, 45일내 소송 제기 여부 결정을 기다리고, 특허권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시판 허가를 30개월로 한정해 권한을 정지한다. 만일 특허권자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묵인’으로 해석, 시판을 허가하게 된다. 사실상 미국이 정하고 있는 30개월의 ‘자동 정지’의 시간은 특허권자에게 판결을 받아오라는 취지의 후발제약사와 특허권자 사이의 균형 조정을 위한 기간인 셈이다.
문제는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 협상단이 당초 특허권자의 소송 제기 시 시판허가 부여를 일정기간(30개월) 자동 정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한국 협상단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국내적으로 이행 가능한 적절한 이행 방안을 강구 한다”는 선에서 합의했다고 밝힌 내용에서 비롯된다.
'자동정지‘ 유리한 내용 .. 단호히 거절한 바보 협상단
허가-특허의 연계기간은 출원일로부터 20년을 보장하는 특허권 존속기간에 해당한다. 제네릭 제약사가 연계 기간을 줄이거나 허가-특허 연계를 깨려면, 특허권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특허권이 무효이거나, 제네릭 제약사가 시판하려는 의약품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는 경우로만 허가-특허 연계를 깰 수 있도록 해 둔다면, 특허권자는 소송 절차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펼 것이고, 제네릭 제약사는 문제가 있는 특허가 존재하더라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허가-특허의 연계가 도입되면 특허권자는 후발의약품들의 시장 진입을 자동으로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제안한 ‘30개월’의 ‘자동정지’ 규정은 사실 국내 제약사와 같은 제네릭 제약사에게 유리한 조항이다. 특허권자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게 제네릭 제약사를 배려한 균형의 방책이다. ‘자동 정지’를 명시함으로, 특허 분쟁의 신속한 결말을 유도하고, 문제가 있는 특허에 대한 이의제기를 장려함으로써 특허권자와 제네릭 제약사 사이의 이익균형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자동 정지는 특허 소송이 제기된 경우에만 발동되며 미국은 30개월, 캐나다와 호주는 24개월로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협상단은 미국 협상단이 제안한 ‘30개월’ 가량의 ‘자동 정지’ 기간을 두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이행 가능한 적절한 이행 방안을 강구’하는 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제약업계에 유리한 '자동 정지' 기간을 거절한 정부가 합의 했다고 밝힌 내용은 사실 공개된 협정문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남희섭 대표는 “협정문에서 비슷한 문구를 찾아본다면 조치를 이행한다(shall... implement measures)라는 표현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도 미국과 호주가 체결한 FTA 에서는 조치를 제공한다(shall... provide measures)로 기재돼 있음을 고려할 때, 사실상 한미FTA에서는 이행 의무가 더 강화됐을 뿐만 아니라, 협정문을 놓고 정부가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허가-특허 연계 대상의 특허권 범위는 더욱 넓어지고
정부는 ‘허가-특허 연계’는 “의약품 관련 물질특허 및 용도 특허에만 적용되며, 제법특허, 포장 특허 등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협정문에는 “제품 또는 그 승인된 사용 방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통보된 특허(notified .. as covering that product or its approved method of use)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제품(의약품)’ 또는 ‘그 승인된 사용방법’을 대상으로 하는 특허는 ‘물질 특허’ 또는 ‘용도 특허’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한 예로 미-호주FTA의 경우 ‘의약품이 특허의 청구범위에 기재된 경우(where that product is claimed in a patent)로 하고 있어 제법 특허가 제외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승인된 사용 방법'이라는 것은 다른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남희섭 대표는 “의약품을 특허권의 권리범위로 포함하는 특허는 물질특허만이 아니라 제법 특허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주장에 근거했을 경우, 오히려 정부가 특허 제도를 잘못 이해함으로 허가-특허 연계의 대상이 되는 특허권의 범위를 오히려 더 넓히는 방향으로 협정문에 잘못 반영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심지어 한미FTA에는 다른 FTA에는 없는 '승인당국에 통보된 특허(patent notified to the approving authority)란 표현이 있다. 특허권자가 의약품 승인당국에 통보하기만 하면 해당 특허를 의약품 허가와 연계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특허권자는 하나의 의약품에 대해 하나의 특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형을 바꾸거나 구조를 조금 변경해 새로운 특허를 받고 이를 계속 등재해 연계되는 특허가 늘 살아 있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이를 에버그리닝(evergreening)효과라고 한다.
한 예로 현재 화이자나 에자이사가 벌이고 있는 소송의 경우도 원천 물질 특허가 만료된 상태임에도 다른 물질 특허로 인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남희섭 대표는 "특허권자는 에버그리닝 전략을 폄으로써 권리를 유지하고, 부실 특허 남발 및 지나친 기회 제한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가) 특허권자의 소송 남용을 방지할 방안을 마련한다고 했으나 오히려 ‘선언적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9개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내용
또한 정부는 ‘허가-특허 연계’로 인한 후발의약품의 허가가 ‘9개월’ 지연 된다고 보고 이를 피해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정부가 ’9개월‘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특허침해금지가처분 사건의 처리기간이 보통 6~12개월이 소요되는 시간에 근거했을 뿐 아무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후발의약품의 허가를 '30개월’ 동안 자동정치하는 이유는 특허 소송을 각오하고 의약품 허가 신청을 한 후발제약사와 특허권자 사이의 균형 조정을 위한 기간으로, 의약품의 허가 기간과 특허소송에 걸리는 기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출한 결과이다. 또한 모든 특허 분쟁 사건이 아닌 의약품 특허분쟁 사건만 고려했고, 가처분 사건이 아닌 본안 소송에 걸린 기간+@의 기간을 합산해 산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9개월’을 들고 나온 배경은, 권리자에게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의 신속한 조치를 위해 인정하고 있는 가처분 사건에 걸린 기간만 고려했을 뿐이다.
그것도 분쟁 기간이 더 오래 걸리는 의약품 특허 분쟁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전체 특허가처분사건을 근거했다. 그리고 미국과 달리 특허권의 무효와 특허침해 여부를 하나의 소송으로 다루지 못하고 민사 소송과 행정 소송이 별개로 진행되어야 하는 한국의 특허소송제도를 구분되지 못한 계산이다. 고로, 한국 정부가 단축했다고 자랑하며, '9개월'이라고 꺼내 든 카드 또한 어림잡은 추정치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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