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미 양국 협상단이 한미FTA 재협상을 마무리 했다. 한국 시각으로 29일 새벽 타결됐고, 한덕수 부총리가 29일 조찬 모임에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TPA(무역촉진권한) 시한 만료일인 30일(미국시간), 기한을 정확히 맞춘 셈이다.
재협상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도, 한미FTA 협정문 만큼이나, 미국의 'all or nothing'의 요구가 전적으로 반영됐음이 확인되고 있다. 정부는 오늘(29일) 오후 3로 예정된 임시국무회의에서 체결 방침을 최종 확정할 예정으로, 사실상 30일(미국시각) 서명 체결은 확정돼 있는 셈이다.
이에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은 "한미FTA협정 체결 문제를 임시국무회의에 상정하여 처리하는 것은 한미FTA로 인한 제도변경 사항에 대한 국회 입법권을 침해한 위헌적 월권행위이자, 재협상 결과의 공개와 분석도 없이 국무회의로 하여금 국민적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성립불가 안건에 거수기가 될 것을 강요하는 탈법행위이며, 이 협정으로 피해를 입을 대다수 각계각층 국민들에 대한 기만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오후1시 대학로에서, 전농, 전빈련, 학생들은 오후2시 종묘 공원에서 각각 사전 대회를 개최하고, 오후4시30분 광화문에서 결합해 '한미FTA저지 범국민총궐기'를 진행할 계획이다.
재협상까지도.. 도대체 얻은것이 없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오전 각종 언론사 편집국장들과 가진 조찬 간담회에서 한미 FTA 추가협상이 타결됐으며 이를 협정문에 포함해 30일(미국시간) 오전 10시 워싱턴에서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재협상 타결 내용으로 밝힌 내용은 △미국이 한국이 요구한 전문직 비자쿼터에 대한 협조를 약속 △노동,환경에서 일반분쟁해결절차 도입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의 의무 이행을 18개월 유예 등이 주요 골자이다.
'전문직 비자쿼터 협조' 약속과 관련해 미 행정부가 조만간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국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지난 해 9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이 VWP에 조속히 가입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비자쿼터 확보'도 아닌 '협조 약속'은 사실상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또한 미국이 요구한 노동 분야의 국제권리를 국내 법령 또는 관행으로 채택, 유지, 집행하기로 했고, 환경에서는 7개 다자환경협약의 의무 이행을 위한 국내 법령 및 조치를 채택.유지하고 집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 사항은 보편적인 국제법상의 의무로, 한미FTA가 아니라 하더라도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할 사안들로, 선언적 내용들이 포함됐을 뿐이다.
특히 노동.환경 분야의 쟁점이었던 '무역보복'이 가능한 일반분쟁해결절차도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금전적으로만 배상하는 특별분쟁해결절차 였지만, 이제는 의무 위반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반분쟁해결절차에 따라 물론 특혜관세 폐지 등 무역보복을 할 수 있거나 벌과금을 상대국에 줘야 한다.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노동, 환경은 미국의 신통상정책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무역보복'의 경우 노동, 환경 조항 위반을 이유로 자동차 관세 철폐를 제거하는 식으로 모든 형태의 무역 보복이 가능해 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는 무역,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입증 요건을 강화하는 등 분쟁절차의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서준섭 연구원은 "위반에 대한 입증 요건 강화보다, 노동, 무역, 투자 등이 어떻게 연계돼 있고,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을 누구에게 두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무게를 실었다.
서준섭 연구원은 노동,환경 조항 강화 내용의 출발이 '미국이 보기에 다른 나라의 노동, 환경에 의한 불공적 무역행위 때문에 미국에 수입이 들고 자국 노동자나, 환경권이 침해된다'는 생각의 인식 차'에서 시작됐음을 강조하며 "재협상의 결과를 보더라도, 노동권, 환경권 증진을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노동기본권, 환경권이 강화되기 보다는 오히려 미국적 시각으로 인한 분쟁 꺼리, 시비꺼리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총평했다.
의약품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는 FTA의 의약품 관련 조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재산권 협정과 공중보건 선언에 따른 공중보건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양측이 확인했고, 더불어 복제약 시판허가.특허연계 이행의무를 협정 발효 후 18개월 동안 유예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외교통상부가 밝힌 미국의 신통상정책에서 의약품과 관련한 조항은 △허가-특허 연계조치 철폐 △특허 승인지연 등 규제승인 지연에 따른 특허연장조치 철폐 △자료독점권의 완화 △자료독점권이 공중보건보호조치를 방해할 수 없도록 하는 예외조치 규정 등 총 4개이다.
재협상 결과만 놓고 봐도 한국은 신통상정책의 4가지 핵심 내용 중에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다. '허가특허연계조치 철폐'의 미국의 신통상정책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의무이행 18개월 유예'로 후퇴, 합의 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미국의 신통상정책의 의약품, 지적재산권 분야는 그나마 진보적인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한미FTA 독소조항들에 대해 한국 측은 삭제를 요구했어야 함에도 하나도 관철시키지 못해, 사실상 성과가 아무것도 없는 재협상"이라고 평가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한미FTA 협상으로 인해 10cm 꽂혔던 칼이, 신통상정책으로 3cm 정도 뽑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한국은 1mm도 제대로 뽑지 못한 상황"이라며 한미FTA 협상 결과에 대한 비극적인 예를 들어 총평했다.
이와 관련해 범국본은 29일 성명을 내고 '한미FTA 체결 방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법국본은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다루기 전, 정부는 한미간 합의한 한미FTA협정문의 이행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법률 개폐의 내용과 제도변경에 따른 변화에 대해 국회에 아무런 구체적인 보고도 한 바 없다"는 것과 "본질적으로 가부간 선택만이 가능한 한미 FTA 협정문 비준 동의안 표결에 헌법을 포함한 수 십 개의 법률 조항의 개폐 문제를 종속시키는 것 자체가 헌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협정문 원문 공개도, 최소한 국회 검증도 없이 국무회의에 한미FTA체결안을 상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절차상 위배행위"로 규정, "정부가 내놓은‘한미FTA국내보완대책’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효과도 의문시되고 있는 조건에서 한미FTA 안건을 처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의 보완대책 보고서의 근간이 된 11개 국책연구기관의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는 지난 4월 발표되자마자 '성과는 과장되고 피해는 축소 된' 조작보고서 논란이 일었고, 이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29일 재협상 타결 내용을 공식 발표하고, 서명식이 끝나면 9월 정기국회에서 비준동의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한미FTA 협정문 서명식은 미 하원 부속건물인 캐넌빌딩에서 열리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이 서명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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