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6일, 승리를 향해가는 사람들과 만나자

[오늘, 우리의 투쟁]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2)

[편집자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너무 오래 싸우고 있다. 갈수록 장기투쟁사업장이 많아지고 벅찬 승리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오래다. 이심전심 통하는 마음으로 연대의 기운을 나누며 힘을 내지만, 지난한 싸움은 주체의 몫으로만 남아 외롭게 이어진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새롭게 결의하며 오늘도 내일도 싸우지만,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외면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오늘, 우리의 투쟁]을 통해 ‘참세상’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연대를 소망하며 전한다.

  포레시아 공장 전경

외국인전용공단 장안첨단단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인적 없이 휑한 도로와 드문드문 들어선 공장들, 프랑스 국기를 연상케 하는 흰색 건물에 파란색 글씨가 선명한 ‘faurecia'. 빛바랜 채 나부끼는 투쟁 깃발과 소원지들이 없었다면, 투쟁의 현장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삭막하고 황량한 정경이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2009년 5월 26일 이후 정리해고투쟁 중인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의 농성장이 있다.

공장 안팎으로 나뉘어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이 곳, 낡은 컨테이너와 허름한 천막 농성장은 무엇보다 든든한 보루다. 7명의 현장 조합원은 출퇴근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빠짐없이 들러 동지들과 나누는 커피 한 잔으로 적진과 같은 공장에서 버틸 힘을 얻는다.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들은 하루하루 싸움의 중심을 잡고, 투쟁에 연대하는 동지들과 나눌 텃밭 농사를 챙기면서 일상을 이어간다.

포레시아 농성장에서, 2007년부터 노동조합과 투쟁을 이끌고 있는 송기웅 지회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희망퇴직자도 철야로 일해야 했던 이상한 정리해고

2011년 7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포레시아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2008년 공장 이전을 앞두고 포레시아 노사는 ‘현 시화공장 재적인원(2008년 7월말 현재)에 대하여 고용보장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맺었고, 이 단체협약의 효력이 인정된 것이다. 2009년 5월 26일 정리해고 이후 2년 2개월 만의 낭보였다.

지노위, 중노위, 행정법원 모두 정당하다고 판정했던 정리해고 이후에도, 공장은 희망퇴직자들까지 동원되어 서너 달씩이나 밤낮없이 돌아갔다.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사측의 항소와 시간 끌기로 사건은 2년 5개월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5월부터 9월까지 매일 철야를 새벽 3시까지 했다. 102명 중에 67명을 잘랐으니 공장을 닫을 거면 몰라도 일은 넘쳐나고 납품을 못 하니까. 매일 세시까지 철야하고, 몰아치기로 하면 밤 12시, 11시에 일을 끝냈다. 발안에 여관 잡아놓고 재워주고 술 사주고 하면서. 그러고 1년 후부터는 일용직들 다시 채용하고. 회유했던 조·반장들, 다 2009년 8월 이후 입사자로 정리해고 대상자인데. 앞장섰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은 또 서너 명 입사시키고.

사실상 경영상 위기 같은 건 없었다고 보고, 지나고 보니까 정리해고 이용해서 노조 파괴하려고 한 거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중에 영천에 공장 지어서 물량 빼돌리고 하는데 노조가 있으면 반대하고 못 하는 거니까. 이런 여러 가지 계획 속에서 한국노총이 아니라 우리를 택한 거 아닌가 생각한다.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정상화 오고 8시간은 일할 수 있는 충분한 물량이 됐는데. 우리가 밖으로 쫓겨나고 소수노조가 되고 나니까 법인 통합시키고, 영천에 공장 지어서 기계설비 빼서 돌리고. 여기 있는 한국노총 조합원들 보내서 일시키고, 불법파견인데. 근데 우리 조합원들은 문제제기하니까 안 보내고. 결국 그런 계획 속에서 무리하게 정리해고를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송기웅 포레시아지회장

왕따와 차별, 비인간적인 착취가 일상이 된 공장

정리해고 이후 금속노조로 남아 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과 차별은 극심했다. 금속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작업장내 왕따와 일대일의 괴롭힘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럼에도 버티는 조합원들에 대한 조직 차별은 어이가 없을 만큼 유치한 수준이었다.

“체육대회를 해도 우리만 일시키고 한국노총은 발안 운동장에서 바비큐파티에 잔치를 벌이고. 우리는 체육대회라고 토요일에 나오라고 해서, 회사앞 주차장에 인사과 두 놈이 앉아 감시하면서 체육대회니까 무조건 족구는 해야 된다고, 안 하면 근무지 이탈. 2010년인가 9월에, 더운데. 그때 금속노조 8명이서.. 지시 하에 아침부터 체조에 족구에 2시간 하고 10분 쉬고. 전체로 화장실 가면 화장실 가고 물 먹으면 물 먹고. 점심도 식당에서 먹고, 여덟시까지 딱 하고 우리는 쌩쌩한데 지들은 지쳐갖고. 우리 해고자들은 맞은편에서 앰프 틀어놓고 맞대응하고. 그런 짓거리를 한 2년은 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지난 일이니 웃을 수도 있지만, 괴롭힘과 차별로 점철된 긴 시간들을 견뎌낸 조합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측의 치졸함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정리해고 이후 지금껏 아무런 안도 내놓지 않으면서, 책임 없는 직원에게 대표 위임장을 들려보내는 형식적인 교섭으로 조합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가 지노위, 중노위, 행정소송 지고 그랬을 때는 교섭 석상에서도 빨리 집에 가라 그러고 탁탁 치고 나가버리고 그랬는데, 교섭 해태로 넣고 하니까 이제 그런 건 없다.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만 대응하고 있어서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 생각하면 안타깝다. 다들 근속이 10년 이상, 15년 이렇게 됐는데... 2008년 임금 그대로 멈춰있고, 신규로 입사한 사람들이랑 거의 같다. 작년에 1명이 정년퇴직을 했는데, 4년 동안 임금이 동결된 상태였기 때문에 퇴직금에 엄청난 손해를 봤다. 단협도 해지된 상태라 같은 공장에서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데도 복지나 수당에서 차이가 많다.”

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하는 자본이 한국노총 조합원이라고 편하게 놔둘 리는 없다. 현장 권력을 장악한 절대다수의 한국노총 조합원들 역시 엄청난 노동 강도와 강제적인 잔업·특근, 연월차 제한 등으로 착취를 당하기는 매한가지다. 심지어 작업 중에 팔이 부러지거나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도, 나머지 한 손으로 청소라도 해야 하는 지경이다. 금속노조 탄압의 반사이익으로 매년 임금은 조금씩 오르지만,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도 이미 괴로운 현장이기는 마찬가지다.

“안에 있는 조합원들의 말로는, 한국노총 조합원들 중에서 밖에 있는 사람들 언제 들어오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현장 분위기가 엄청 안 좋고 한국노총 조합원이라도 한 번 찍히면 뺑뺑이 돌려서 그만 두게 만든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회사에 찍히면 왕따 시키고 잔업도 안 시키고... 그래서 얼마 전에도 그만 둔 사람이 있다, 그동안 몇 명이 있었다.”

  영등포역 선전전

의리로, 정으로 민주노조를 지켜온 평범한 사람들

금속노조 포레시아지회는 구 창흥정밀 시절 세 번의 조직전환 시도 끝에, 2003년 포레시아가 부분 인수되면서 설립되었다. 당시 위원장의 산별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인한 결과였고, 조합원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이나 결의가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금속 전환 이후에도 지침 수행 차원의 부분파업만 겨우 했을 정도로 투쟁에 소극적인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갖은 탄압을 당하면서도 공장 안에는 극소수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몇 년째 버티며 민주노조의 깃발을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합원들이 그 전에 원만했을 때 노동조합에 막 적극적이거나 열성적이거나 그랬던 건 아니다. 어디 집회 가자고 버스 대놓고 있으면 새서 도망 다니고 집행부들은 앞에 딱 서서 못 가게 막기도 하고, 조합에 대한 불만도 있고 뭐 그랬는데... 어느 날 보니까 남아 있더라. 목소리 크고 막 관심 있던 놈들은 다 탈퇴해서 회사로 붙었고, 묵묵했던 조합원들이 남아서 탄압 속에서도 현장에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그놈의 의리, 그간에 해왔던 동료들에 대한 정들, 배반하는 놈들에 대한 배신감... 뭐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리와 정으로만 지켜내기에 만만한 세월은 아니었다. 아무리 묵묵한 조합원들이라도 4년 반의 투쟁이 늘 순조로웠을 리는 없다. 때로는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결의가 떨어질 때도 있다. 당장의 밥벌이가 아쉬워 생계를 나가야만 하는 조합원들도 항상 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이 기꺼이 버팀목이 되어 투쟁을 떠받치며 모두 함께 지금까지 왔다.

“처음에 7명이 결의를 했다, 대법 끝날 때까지는 생계 안 나간다고. 결의한 사람들이 농성장에서 버티고 있으니까 생계 나갔던 사람들도 순서대로 들어오는 거고. 결의한 사람들이 들쑥날쑥하면 생계 나간 사람들도 안 올 것이다. 어쨌든 생계 나가면 편하다. 일을 해서 따스한 밥을 먹고 집에서 따뜻하게 자고, 길에서 떨면서 집회하고 추운 데서 자고 그런 고생은 안 하니까. 공장 안에 있으면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농성하는 사람들만큼 고생은 안 하니까. 큰 이슈는 안 됐지만 여기 농성장에서 그래도 꾸준히 버텨주고 있으니까, 미안한 감이 있는 것 같더라. 다들 착하니까 남아있는 것 같다. 머리 안 굴리고 계산 안 하고 하니까 이런 투쟁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포레시아지회 하루주점

1656일, 승리를 향해가는 그 사람들과 만나자!

정리해고 이후 흐른 시간만큼, 각자의 삶에 내려앉은 고통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봄이 되면 농성장 옆 텃밭에 씨를 뿌리면서, 여름이 다가오면 농성장 옆에 그늘막을 치면서, 이렇게 여름 나고 겨울 날 준비를 하면 투쟁이 더 길어지는 건 아닐까 고민도 한다. 하지만 산이라도 옮길 듯 묵묵히 싸워온 날들이 준 가장 큰 교훈은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통하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오늘까지 왔다.

“회사가 어려워서 정리해고 시킨 게 아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 같다. 지역에서는 우리가 빨리 끝날 줄 알았다고, 접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술 먹다 보면. 처음에는 투쟁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고 설명해달라고 막 그러고 했는데. 다들 손 털고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어? 어느 날 보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있다고. 우리는 경기지부나 때 되면 찾아오는 연대에 대한 고마움을 상당히 깊이 느끼고 있다. 어려움들은 많이 있지만 연대해주는 이들을 배반할 수 없고, 지금까지 확실한 사람들만 남아 있는 거니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잘 하면서 가고 있다.”

11월 초에는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청구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물론 사측은 가집행도 할 수 없도록 손을 쓰고 바로 항소했지만, 꾸준한 투쟁 속에서 이렇게 작은 승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29일, 수원역에서 진행한 투쟁기금 마련 하루주점 ‘1600일의 그 사람들과, 만남’에는 많은 동지들이 함께해 승리의 마음을 모았고, 어제는 다섯 번째 투쟁의 겨울을 준비하는 김장도 마쳤다.

간단히 말할 수 없을 1656일을 딛고, 오늘도 포레시아 동지들은 승리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무던하고 성실하게 민주노조를 지키며 다져온 투쟁, 이번 겨울이 거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겨울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연대로 힘을 보태자.

포레시아 후원계좌: 기업 582-00-9349-01019 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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