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우리는 오늘날 처절할 정도로 부자 되기에 골몰하고 있을까. 며칠 전 접수를 마감한 송도 오피스텔 청약 경쟁률은 4,855대 1이었다. 당첨만 되면 수천만 원의 이익금을 쥐게 된다는 이유로 220여 가구 모집에 59만 7천여 명이 접수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결국 돈으로 귀착된다. 누가 우리 국민을 이런 로토 방식의 인간형으로 개조했는가.
행복은 성장의 아들이다?!
이른바 ‘대권주자’라 불리는 몇몇 정치가들은 성장을 통한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한 가지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나라당 예비후보 이명박 전 시울시장이 얼마 전 ‘7-4-7 전략’이란 걸 발표했다고 한다. 연평균 7% 성장과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 강국을 미제 비행기 이름으로 공론화한 것이다. 이런 공약이 실현되면 우리는 정말 더 행복해질까.
장기집권을 획책하기 위해 1972년 유신헌법을 강행하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문제에 국한하여 홍보용으로 만든 만화가 내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만화 삼국지>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신동우 화백이 그야말로 한껏 솜씨를 낸 작품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굵직한 활자로 선명하게 각인된 글자는 30년 긴 세월에도 잊히지 않았다.
- 1980년 수출 백억 불 국민소득 천 달러 -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만화가는 그림 속에서 천 달러가 얼마나 큰 돈이며, 그것으로 남한 백성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실감나게 그려냈다.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어른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한 우리 나라 국민을 저렇게 잘 살게 해준다는데, 10월 유신에 반대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유신헌법은 91.5%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시간은 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갔고, 대한민국은 1977년에 수출 백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국민소득도 천 달러에 육박했다. 성장목표를 3년이나 일찍 달성했지만 신동우 화백이 그림에서 약속했던 아름답고 화려한 날은 결코 오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난에 시달렸으며, 이런 형편은 친구들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때문이다.
수출과 소득이 커지면 그만큼 행복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수출은 3,200억 달러, 국민소득은 거의 2만 달러에 이르렀다. 30년 만에 수출은 32배, 1인당 국민소득은 20배 늘어난 것이다. 이쯤에서 잠시 생각해보자. 나라의 수출과 소득이 늘어난 만큼 대한민국 백성들은 더 행복해지고 풍요로워졌는가. 우리 모두가 앞날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꿈을 안고 오늘을 살며, 내일을 설계하고 있는가.
어느 인터넷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문맹률 53%, 국민소득 1,400 달러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부탄’의 행복지수가 세계 8위라고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행복은 돈에 달려 있지 않다는 실감나는 증거다. 물론 유럽의 잘사는 나라들, 이를테면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의 행복순위가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무엇인가.
중산층이 부담 없이 지불가능한 수준의 교육비, 맑고 수려한 자연경관, 합리적인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사회 안전판의 확충 등이 행복지수 상승의 견인차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떤가? 세계 102위라고 한다. 세계 열한 번째 경제대국이라는 나라의 행복지수가 그토록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녕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나날이 격화되는 생존경쟁, 커져가는 실업의 공포, 비정규직 양산으로 대표되는 사회양극화의 심화, 끝을 모르고 치솟는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 고강도 처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다시 추가되었다. 농어촌 붕괴는 눈앞의 현실이 됐다. 대책도 없이 언제부턴가 경을 읽듯 되풀이되는 통상장관들의 농촌지원금 119조 원 합창은 이제 신물 날 지경이다.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행복추구권’이 존재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내용이다. 이것에 기초하여 우리 헌법은 국가가 개인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개인을 국가의 도구로 취급하는 전체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은 국가의 기본질서이며, 법해석의 최고기준인 근본규범인 것이다.
자, 묻는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인과 관료들은 ‘국익’이라는 것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는가. ‘국익’이란 문자 그대로 나라의 이익이다. 그런데 그 나라가 누구의 것이냐는 것이 문제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1항이다.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온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국익은 나라의 이익이지만, 결국 그것은 국민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익에서 배제되고 소외받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고, 누구인가. 350만 농어민과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이 살만한 환경과 일자리와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여 인간다움 삶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최소의무가 아니겠는가.
‘미국표준’을 ‘세계표준’이라 믿는 자들의 집단이 강행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대기업과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기업가 집단과 소득상위집단이 누구보다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것이 좋은 반증이다. 그와 반면에 제주도를 위시한 변방과 지방의 농투성이와 어부들과 그 어린 것들의 삶은 어쩔 것인가. 얼마간의 돈만 쥐어주면 그뿐이라는 생각 아닌가.
행복을 찾아서
국제통화기금의 광풍에 휩쓸리면서 고통스럽고 힘겹게 10년째 살고 있는 민초들의 꿈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재화와 물질에서 행복을 찾으며, 그것을 부추기는 권력과 언론의 동맹은 참으로 악랄하다. 1% 사회가 40%의 부를 독점하는 미국이 어찌 세계표준인가. 의료보장 같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부실한 사회가 어찌 우리의 미래란 말인가.
진실로 우리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이다. 무한경쟁과 성장신화와 부의 끝없는 축적이 아니라, 부의 공정한 분배와 건강한 사회윤리와 청정한 생활환경이 행복의 요건이어야 한다. 돈이 인간의 평가기준이 되는 사회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 행복하다. 최고부자 말이다. 왜 모든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가.
이제 행복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자. “부자 되세요!” 따위의 천박한 구호를 던져버리고, 정말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사회와 국가’를 만들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경쟁력이나, 성장신화, 성장동력 같은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남북화해와 군비축소와 공교육강화와 비정규직 철폐와 식량자급이다. 이것이 행복을 찾는 근원이자 원천이다.
작년 국방예산은 22조 5천억 원이었고, 학부모가 지불한 대학등록금은 10조 원이었다. 앞으로 5년 동안 정부는 150조 원을 국방비로 쓸 것이라고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최소비용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남북화해로 군비축소 시대를 열고, 그 돈으로 대학등록금을 무상으로 하면 어떤가. 꿈같은 이야긴가? 하지만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우리 모두 행복을 꿈꾸고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진정 바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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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님은 경북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