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노무현정권의 마지막 필살기인가 (1)

[기고] 노무현정부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남한사회 전체가 제2차 남북정상회담개최에 대해서 찬양일색이다. 어찌 보면 한나라당 같기도 하고 심형래 감독의 ‘디 워’ 같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빅2’도 아닌데, 묻지마 지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도 아닌데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매장당할 분위기다. 심형래 감독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생산적인 논쟁이라면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도 냉철한 인식과 분석이 필요하다.

필자는 작년부터 지난 1년 동안 금년 8월내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그 전망이 틀리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면서 한미FTA를 체결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막중한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혹자들은 “그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누가 정권을 획득하던 마찬가지인데”라고 반문을 하곤 했다. 물론 차기 정권에서 추진한다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정세의 급변 가능성을 고려하면 조건과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것이다.

또한 작년부터 금년까지 현 정세를 주도했던 한미FTA가 한국사회에 끼칠 영향을 고려하면 도저히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지배세력 내부의 분파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현실운동의 흐름의 변화를 주도하거나 현실운동을 역전시키기 위한 전략의 재구축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현 정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고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미로를 헤맬까봐 걱정이다. 벌써 이랜드-홈에버 투쟁이 순식간에 묻히지 않았는가.

최대 난제는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애국주의적 관점과 인식이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벗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한미FTA 반대 투쟁 전선을 구축 강화하고자 한 것은 아름다운 반란을 꿈꿨기 때문이다. 지배계급, 그리고 그들과 동맹하고 그들을 조종하는 자본주의 중심부와 그들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에 대한 반란 말이다.

투명성도 부족하고 준비성도 부족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말들이 많다. 언론들은 거의 협박수준이다.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해야 할 것으로 북핵폐기 확약, 분단고통 해소, 군사적 신뢰구축 3가지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국민합의 없는 통일방안, NLL 재획정, 국민부담 가중하는 대북지원 3가지씩을 담은 ‘3가 3불 원칙’을 확정, 정부가 이를 지켜줄 것을 촉구했다. ‘냉전.안보.북한 딜레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그들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NLL을 놓고 언론들이 공격적이다. “주권을 포기한 행위”(조선일보, 8.13)이며, “엄청난 역풍”(연합뉴스, 8.11)이 분다고 한다. 21세기에도 변하지 않는 대 국민 냉전의식 고취 전술이다. 향후 본격적인 싸움을 대비한 탐색전이자 몸 풀기이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설레발치고 난리다.

게다가 오는 20~31일 실시될 을지포커스렌즈(UFL) 연습 기간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화랑훈련을 정상회담을 고려해 9월 이후로 연기했다고 한다. 화랑훈련은 작년까지 매년 봄 또는 가을에 UFL과 별도로 실시하던 훈련인데, 올해 처음으로 UFL과 병행해서 실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정말 이상하다. 거의 1년여 동안 정상회담을 준비해온 노무현 정권이 북한의 입장을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다. 가만히 보니 정말 노무현 정권답다. 미국, 남한사회 내부, 그리고 지배세력 분파 및 북한까지 모두를 일거에 잠재우는 1타 4피. 당신이 진정한 타짜입니다.

평양과의 거리 좁히기 실패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와 국내 정치지형에서의 힘 관계 속에서 그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2.13합의 이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큰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북에서는 북핵문제를 체제에 대한 보장과 생존을 위한 지원 및 세계경제체제로의 편입을 요구하는 북한 내부 상황의 외적인 표현방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2.13합의를 주목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일부 변화가 되었고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변화가 되는 등 노무현 정부에게는 재도약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기 때문에 2.13합의가 남북관계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대북 쌀 차관의 2.13합의 연계, BDA 문제 해결의 공헌도 부족 등 주변 국가들에 비해 평양과 거리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크게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힐 차관보의 방북이 있기까지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북한을 설득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스스로 남북관계의 공간을 좁힌 측면도 있다. 쌀 차관 제공과 2.13합의 이행 연계론은 핵심적이었다. 힐 차관보가 방북하고 중국 외교부장의 방북 계획이 발표된 6월 21일 남북 간에 벌어진 일은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날 북한 해군사령부는 남한의 전함이 북한 영해를 계속 침범하고 있다며 “새로운 제3의 서해해전으로, 나아가 해전의 범위를 벗어난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한 불찌(불씨)로 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북미, 북중 간의 대화 움직임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2.13합의 이후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시작으로 7개월 만에 당국차원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남북관계 진전의 동력이 가동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남북간 회담 횟수의 급격한 변화뿐만 아니라 북핵문제 등이 남북관계의 주요 변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7월 베트남에 있던 탈북자 460여 명을 대거 입국시키자 북한이 남북대화를 1년간 중단시킨 바 있다. 즉 남북관계는 남북한 각각의 대내적 요소와 국제적 요소에 의해 촉진되거나 제약받을 수 있다. 그래서 지속적인 남북관계의 진전과 평화정착에 새로운 관점과 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남북관계 발전이 민족의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게 있어서 남북관계 발전의 주요 변수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과 북핵 문제 그리고 남남갈등 3가지로 요약된다.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과 북핵문제는 남북관계가 남한 정부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의 협조 및 공조가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02년 10월의 제2차 북핵 위기와 이후 2006년 10월의 북핵 실험은 노무현 정부에게 대북정책의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불거진 남남갈등은 노무현 정부 들어 더욱 고조되었는데, 국내 정치적인 상황과 연동되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갔다. 대북인식, 남북관계, 통일문제 등에 있어서 견해차이가 상당해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김대중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다른 의제들과 맞물리며 정세에 대한 명확한 분석 능력이 부족하였고, 그로 인해 대처 능력도 떨어졌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남북관계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대북정책의 일관성 부재는 결정적이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 실험 이후 제한된 형태로 식량과 비료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경제안보에 일정한 제약을 가했다. 이러한 제약이 대북정책의 효과를 위한 전술적 측면으로 이해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인다. 그것은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했다는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노무현 정부는 중심을 잃고 흔들렸으며, 그 결과 대북 식량지원 유보라는 결정을 내려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남한내부는 엄청난 내홍에 시달리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또한 북한 핵실험의 궁극적인 원인이었던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소홀히 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무시, 제재, 고립 등 대북 강경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시키지 못하고 북한을 핵개발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북핵 문제의 안정적 관리라는 정책의 실패는 사전에 준비된 셈이었던 것이다.

한미간 2인 3각 달리기

한미동맹과 6자회담이라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성격은 남북관계를 지배하는 주요 변수중의 하나이다. 노무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미군기지 평택 이전, 한미FTA 체결 등 수많은 대미 굴종적 협상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했지만 한미관계가 예전과 같지는 않다. 그것은 국가와 시민사회가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상반되게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팽택 투쟁, 한미FTA 투쟁 등을 통해서 남한의 사회운동이 미국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남한의 시민사회 공간에서 미국의 영역이 축소되었다. 노무현 정권의 자발적인 복종을 통해서 밀렸던 힘을 회복하고 상실한 공간을 되찾으려고 했으나 한계에 부딪쳤으며, 이 과정에서 남한의 반미감정이 상당히 세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미국은 김대중 정부 이후 대미 의존도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추구하려는 움직임과 강한 반미정서 때문에 한국에 대한 감정의 찌꺼기와 의심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당분간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대북 협상력은 취약한 상황이다. 대북정책에서 일본의 협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믿음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북한을 다루는 데서 한국보다는 중국의 역할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는 아마도 한국보다는 중국을 더 신임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이 대북 독자 주도권을 고집할 것을 우려한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은 한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이익을 소홀히 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 개최 합의 과정에서 미국의 핵 불능화 요구가 북에게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도 미국에 대해 똑같은 서운함과 의심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BDA해결 과정에서 그 역할과 기여도가 적었으며, 그로 인해 앞으로 6자회담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서서히 벌어진 한미관계와 반미감정이 노무현 정부에서 더욱 심화되자 부시는 가끔씩 노무현 정부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남한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불신하는 상황을 연출하여 노무현 정부로 하여금 조급증을 유발시켰다. 이에 노무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 그리고 평택 미군기지 문제 등을 해결함으로써 미국의 의심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북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며, 한미FTA 협상에서도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노무현 정권을 자극한 것이다. 게다가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종속되어 간간이 경색되는 국면을 연출하였다.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노무현 정부는 북미관계의 급진전 속에서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또한 남북관계의 진전이 속도가 더딘 북미관계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하였다. 탄력이 떨어진 정상회담 추진에 부시의 하노이 발언은 커다란 힘이 되었다. 2006년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의 “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그리고 자신이 참석해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하자”는 하노이 구상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추진 동력이 된 것은 명백하다. 즉 미국의 동의와 협조 없이 노무현 정부 스스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킨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6.15의 한계를 실감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뒤이은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선언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시기 선택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민족문제는 여야에 의해 정략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정쟁의 대상으로 이용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활용될 지 주목된다. (계속)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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