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만] 진보전략회의

태만과 과태료

[칼럼] 선거실명제에 대한 참세상의 태만

누구든 대선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전철을 타고가면서, 걸으면서, 차나 술을 마시면서, 집에서 식구들과 대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든 언제어디서든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말해야 한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인터넷 선거실명제는 이와 똑 같다. 게시판에 글을 쓰려면 주민등록번호를 대라는 것인데,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누가 이걸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그래서 참세상은 인터넷 선거실명제라 불리는 주민등록번호 확인제도를 거부하기로 했다.

과태료(過怠料)는 태만해서 물리는 금전적 처분이라고 한다. 참세상은 12월7일자로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고 대선 끝나는 날까지 매일 하루에 50만원씩 추가된다. 참세상이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것은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 기술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태만을 저질렀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참세상은 기술적 조치를 취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과태료 1000만원을 맞을 수도 있었다. 영세한 인터넷 언론의 처지에선 힘든 일이지만 1000만원으로 국민 기본권을 지킬 수 있다면 차라리 싼 값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나면 과태료 처분 받고 그냥 끝난다. 싱겁고, 재미없고, ‘돈만 날리는 꼴’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법을 지키면서도 선거실명제를 거부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참세상은 덧글을 포함하여 모든 게시판을 폐쇄했다. 여기에 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에서는 독자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토론 싸이트를 만들고 참세상 기사와 의견을 달 수 있게 하였다.(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그 의견을 참세상 기사 하단에도 보이게 하고 진보넷의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경로도 제공했다. 쉽게 말해, 참세상 게시판은 모두 폐쇄했지만 진보넷 싸이트를 이용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볼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게시판을 폐쇄하면 실명제를 할 필요가 없고, 인터넷 언론사가 관리 운영하지 않는 게시판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있었다. 그래서 참세상은 게시판을 폐쇄하고 참세상이 아닌 진보넷이 관리 운영하는 덧글 게시판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는 참세상의 이러한 기술적 조치를 실명제 이행에 태만한 것으로 보았고, 실명제 이행명령을 내렸으며, 과태료 부과까지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태만하지 않았다. 이런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 우리는 매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선관위 측과는 수차례에 걸쳐 참세상의 기술적 조치가 실명제 조치에 위배되지 않는 다는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참세상 기사는 네이버에도 제공된다. 참세상이 네이버에 있는 참세상 기사의 덧글을 쓸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하고 네이버에 달린 덧글을 보여준다고 해서 선거실명제에 위배되는가? 참세상이 취한 기술적 조치는 이와 똑 같은 방식이다. 아마 네이버 덧글을 보여주었다면 선관위는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넷에 있었다. 네이버는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후 글을 쓰게 하지만 진보넷은 그렇지 않다. 이른바 비실명 인터넷 싸이트기 때문에 비실명으로 글 을 쓸 수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진보넷의 문제이지 참세상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넷은 인터넷 실명제를 해야 하는 싸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실명제에 저촉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문제는 법원까지 가야 할 성싶다. 선관위와 정부가 끝까지 독자들의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참세상의 기술적 조치가 이러한 실명제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고집한다면, 우리도 우리의 고집을 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와 정치사상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태만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말

홍석만 님은 사단법인참세상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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