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판 '프리메이슨' 실체 드러나

[기고] 쿠르드족 언론인 "터키정부, 군부, 에르네게콘 다르지 않아"

최근 터키에서는 에르네게콘이라는 비밀조직이 적발되어 한달 넘게 메인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뉴스 때문에 집권 여당의 폐쇄 여부라는 희대의 뉴스조차도 묻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건인즉슨 이렇습니다.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에르네게콘이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한 뒤, 요인 암살과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 조직은 정부와 군부의 고위 인사를 포함한 터키 각계의 유력인사들이 망라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파악되어 체포된 사람만 80명이 넘고 있지만, 이 조직이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른바 터키판 '프리메이슨'인 셈입니다.

10여 년 전에 이 조직에 관해 언급했던 한 언론인이 암살을 당한 이후 그간 이 조직의 존재 여부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이런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배경에는 아마도 터키 행정부와 군부의 권력싸움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그들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이 조직을 자체적인 정보와 판단만으로 적발해냈다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조직의 제거를 결정할만한 곳은 그보다 훨씬 더 윗선임이 분명합니다. 현 정부의 총리인 에르도간 아니면 행정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 최고 수뇌부 정도가 이 조직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조직의 붕괴로 현재 더 큰 이익을 보게 될 조직은 행정부보다는 군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터키집권여당 폐쇄를 헌재가 기각하면서 군부는 외형상으로는 권력싸움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쿠르드족 게릴라(PKK)를 상대로 대규모의 군사작전을 진행 중인 상황(즉 전쟁상태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최대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당한 정치적인 패배인지라 군부가 입은 심리적인 타격은 더욱 커 보입니다.

에르네게콘 사건으로 인해서 권력싸움에서 군부의 패배가 언론의 관심에서 비켜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에르네게콘이 터키 세속적 민족주의 조직이라는 점에서 군부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조직이기에 과연 군부가 스스로의 치부를 덮기 위해서 극약처방을 내렸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조직의 제거는 이슬람주의를 내건(실제로 이 정당이 이슬람 정당이라고 믿는 터키 사람도 드물지만...) 집권당이기에 세속적 민족주의에서는 한발 비켜나 있어서 이 조직의 제거는 집권당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에르네게콘 사건의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이 사건의 진상이 완벽히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희대의 사건이 한국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유럽과 미국의 언론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있는데도, (특파원 파견보다)외신 베껴 쓰기를 특기로 하는 한국 언론이 이런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쿠르드족 한 언론인은 칼럼에서 "터키 정부, 에르네게콘, 터키 군부 그 누구든 우리에게는 별다를 게 없는 존재들이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더군요. 이들 모두 쿠르드족을 탄압하는데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8월 3일) 터키의 이스탄불 균교레 지역에서 폭탄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폭발로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수는 17명이고, 154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피해자 수가 가장 많은 폭발사고 입니다. 대부분의 주류 언론에서는 쿠르드족 게릴라의 소행이라고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물론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언론(보수언론을 포함한)에서는 에르네게콘의 남은 일당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소행으로 추정을 하는 기사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습니다. 쿠르드족 게릴라가 그간 벌여온 공격의 형태와는 너무나 다른, 분명하게 민간인만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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