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거부하고 연대할 권리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19) 단결, 투쟁, 정치적 결사의 자유로

[편집자주]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참세상과 함께 사회헌장의 내용을 하나씩 이야기하면서 그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합니다.

“18조. 노동자들은 위계와 경쟁을 거부하고,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나설 권리가 있다. 이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의 처지는 비정규직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아낌없이 연대하고 함께 투쟁합니다. 서울지역의 대학청소노동자들이 직접 다른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 노동자들의 투쟁에 아낌없이 연대하는 것은, 경쟁을 거부하고 함께 투쟁할 때 우리 모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싸우는 모든 이들은 싸우는 이들의 아픔을 알기에 함께 연대합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이런 연대의 정신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연대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올랐던 이들을 무더기로 기소하고, 골든브릿지투자증권에 연대했던 이들을 주거침입으로 고소하며, 쌍용자동차의 대한문 투쟁에 함께했던 이들을 연행하고 형사처벌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기의 임금과 단체협약을 위한 것만으로 좁히고, 정치적 권리를 위해 공동투쟁을 하는 것도 처벌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연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연대는 다른 이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연대파업을 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사회에서 함께사는 길을 만들어나가는 노동자들의 연대야말로, 노동자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될 것입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무분별한 해고에 맞서 2005년 노동조합을 설립했을 때, 기륭전자에는 전체 500명의 사원들이 있었다. 그중에 생산직은 300명이고 생산직중 정규직은 10명, 계약직은 40명, 나머지 250명은 불법파견으로 고용되어 있었다. 이때 기륭전자의 고용형태가 노동부에 고발되자 당시 관악노동청장은 “등장해서는 안 될 고용형태가 등장했다”며 놀라워했다. 생산직종에 간접고용인 파견노동이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에 공단을 휩쓸었다. 지역차원에서 이를 조사하고 고발하며, 그 대표적 사례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자해고, 잡담해고’를 사회화했고,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던 기륭전자에서도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받고 검찰도 인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파견노동 자체도 불법인데, 불법을 불법으로 도입한 문제로 기륭전자는 500만 원의 처벌(벌금)을 받았을 뿐, 불법의 해결과 반성과 피해 보상은 없고, 전원 해고라는 피바람만 몰아쳤다. 불법파견을 해결할 법과 제도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이유로 계약해지가 정당한 해고라고 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도 사정은 안타깝지만 파견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면 고용유연화 기조가 타격을 받아 대외적 신뢰가 깨지고, 이미 광범하게 확산된 불법파견을 경쟁력으로 삼는 공단의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는다고 하면서 해결을 외면했다.

열심히 일만 한 우리는 부당한 해고가 억울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억울해 복장이 터져 죽겠는데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해결책이 없는 처지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법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노동자들의 생존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법, 제도, 정치가 해결을 못한다면 사회를 바꿔서라도 불법과 탄압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나의 절박함에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손품과 발품을 먼저 팔자고 했다. 우리의 승리는 연대의 확대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우리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무슨 연대냐!'고 주저하던 조합원들도 연대의 맛을 알면서 우리의 투쟁만큼 연대 투쟁에 열심히 참여했다. 법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민중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법을 뛰어넘는 정치가 필요하고 그 정치를 만들어 내는 것도 결국 사회적 연대 투쟁의 힘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이런 생각은 2008년 당시 광우병 촛불과 만나 비정규직 문제와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문제를 연결하였고, 그 때 만든 구호가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하자’라는 구호였다. 2008년 끝장단식 투쟁을 하면서 노동조합을 뛰어넘어, 노동운동에서 멀어졌던 분들까지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영역의 학계, 법조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정당, 학생, 촛불시민 등 소중한 분들과 만났다. 밑으로부터의 간절하고 가열찬 연대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로 쌍용자동차와 한진과 울산의 희망버스로 모아졌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핸드폰 문자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성과도 있었고, 불법파견 문제도 우리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그래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연대 투쟁을 열심히 하는 우리를 회사는 ‘민주노총이 정치적으로 기획한 투쟁’이라고 몰았고, 회사의 운명이나 복직 등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정치와 연대를 현장 일터와 분리시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자본의 분리 통치술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도 몰래 연대를 기피하고 기업적 차원에서 노조활동 등을 제한하는 관습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그들의 비난이 우리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칭찬이라 생각했다. 언론보도에 가장 못된 노조로, 노조가 불필요한 사례로 기륭이 사용자들에게 교육되고 있다고 할 때도 사회적 연대로 정치적 공격으로 나가는 우리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여겼다. 그렇게 다시 우리는 6년의 시간을 가지고 복직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도 정치적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려버리는 자본과 권력, 지배자들의 횡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리의 노력은 문제해결을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해결을 위하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정치가 현실을 규정할 수 있도록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정책적 파업, 그리고 연대파업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돈과 자본의 허위 약속을 강제할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존엄한 생존으로 입증되어야 하며 그것은 바로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의 권리가 완전히 보장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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