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납치극이 일어난 것은 19일. 공교롭게도 19일은 정부가 레바논에 파병한 동명부대가 현지에 도착한 날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아프간과 이라크에 이어 레바논까지 파병을 함으로써 미국의 3대 대 테러전 모두에 참가했다.
정부는 파병이 ‘평화와 재건’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며, 현지 무장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며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을 묵살해 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 목적과 한국 정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대 테러전쟁에 ‘파병’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되었다.
한 때의 ‘친구’가 ‘적’으로
탈레반과 미국의 악연
탈레반이 미국에 있어 ‘테러범’ 낙인이 찍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미국이 아프간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이다.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좌파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 정부를 뒤집기 위해 우익세력에게 돈, 무기, 군사 훈련 등을 제공하면서, 좌파 정부를 뒤집고 소련군이 1989년 1년 아프간에서 물러가도록 원조를 제공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국내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지지를 통해 무자헤딘의 저항운동은 성장하기 시작한다. 1984년 중동에서 소련과의 전쟁을 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규합할 당시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로 후퇴했던 오사마 빈 라덴은 1996년 탈레반 정권의 묵인하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다.
탈레반은 1994년 극단적인 정치적, 종교적 지향을 가진 수니 이슬람 세력의 푸시툰 그룹이 주축으로 등장한 무장세력으로 진정한 이슬람 정권을 수립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당시 다양한 정치, 군사, 인종, 종교간 갈등이 내전 상황으로 치달아 5만여 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대량학살이 만연했던 당시 아프간 시민들은 탈레반 정권이 내전을 끝내고 안정된 정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탈레반 정권을 지지했다. 마침내 탈레반은 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하며 2001년 미국의 개입으로 권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5년간 아프간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왔다.
탈레반 집권당시 美서 전폭적 지지 보내
석유 수송관 계획 틀어지자 탈레반 압박...봉쇄조치 취해
소련이 물러간 아프간에서 미국은 정치적, 군사적 협정을 맺고 카스피해 지역에 있는 미개발 석유, 가스 자원을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걸프만에 의지해왔던 석유자원 출처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그리고 아라비아해에 이르는 가스 수송관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1993년부터 투르크메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석유 수송관을 세우기 위해 캘리포니아 석유기업연합(Unocal)과 협상을 시작한다. 캘리포니아 석유기업연합에 고용되어 있었던 인물로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중앙아시아 가스 수송관 콘솔티엄(CentGas)이 만들어 졌으며 여기에는 현재 미 국무부 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쉐브론 이사회에 있으면서 이 프로젝트를 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수송관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아프간의 정치 상황이 안정화되는 것은 필수적이었고, 따라서 미국은 탈레반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기 이전부터 탈레반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1998년 빈 라덴이 아프리카에 있는 미 대사관에 폭탄 공격을 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을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빈 라덴의 추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석유기업연합(Unlocal)은 탈레반 정부가 불안정하고 신뢰가 없다는 점을 들어 계획을 철회했다.
1999년 관련된 국가간의 협상이 재개되기는 했으나 큰 진전은 없었다. 급기야 2001년 7월 열린 G8정상회담에서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한 의제가 안건으로 올라왔고 참가국들은 탈레반 정부가 파이프라인 건설 및 빈 라덴 축출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압박했다.
911과 탈레반 축출
석유 수송관건설 계획의 부활
2001년 911사태가 터졌다. 탈레반은 여전히 증거가 없는 한 빈 라덴의 추방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탈레반과 협상도 토론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10월 7일 미국, 영국 연합군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탈레반은 카불을 미국에 내주었다. 미국은 대신 하미드 카르자이를 앞세워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다. 하미드 카르자이는 전 CIA 요원이다.
2002년 카르자이 정부는 석유 수송관건설계획을 부활시켰다. 캘리포니아 석유기업연합(Unocal)은 다시 아프간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석유 수송관건설계획은 카르자이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일어나면서 다시 고착상태에 있다.
민심이반 틈 비집고 발호한 탈레반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에 외국군을 들여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카르자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과 비난의 틈을 비집고 탈레반은 최근 다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외국군에 대한 공격이 2005년 150건으로 보고되었으나, 2006년 한 해 동안 외국군에 대한 공격은 600건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카르자이 정부는 현재 실질적인 전국 통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며, 탈레반은 다시 지지를 얻으며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이런 지지를 기반으로 해 지난해부터 외국인들을 인질로 삼아 철군을 요구해왔다. 탈레반의 공격 대상은 미국군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미국의 대 테러전에 동조해 파병한 국가들에게도 철군을 요청하는 납치극을 해 온 것이다. 작년 3월 아프가니스탄 남부 지역에서 독일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알바니아인 4명을 납치해 처형했고, 4월에는 인도 기술자를 납치해 처형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3월에 이탈리아 기자, 4월에는 프랑스 구호단체 회원들이 납치되었으며, 6월에는 독일인이 납치되기도 했다.
최근 탈레반이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미 테러전을 지지해 파병한 국가들의 ‘철군’을 압박함으로써 미국을 곤란한 지경에 빠트리는 것이 전술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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