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뿐인 대한민국, 그리고 비정규직

"열심히 일만 했는데..." 쌍용차 위기의 첫 희생양 비정규직

“열심히 일만 했죠. 근로자니까 열심히 회사 오가며 맡은 일 충실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쉰둘의 김미랑 씨는 큰 한숨을 몰아쉬며 눈시울을 붉힌다. 김미랑 씨는 2002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라인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입사 3년차인 2005년, 쌍용자동차가 중국의 국영기업 상하이차에 팔려 경영진이 바뀌었다. 공장이 술렁거리고 조업이 중단되고 때론 휴업에 들어가더라도, 김미랑 씨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했다.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에 해마다 3천억 원씩 1조2천억 원을 투자하고 연간 30만 대의 생산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는 경영진을 듬직이 생각하며 좀 더 신나는 일터가 되리라고 기대했다.

김미랑 씨는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급이 법정최저임금에 더하기 1원이라는 사실에 불만이나 원망이 없었다. 눈뜨면 출근할 회사가 있으니 마냥 행복했다. 주야 교대를 하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지난 해 미국의 경제위기로 시작된 세계 경제 침체는 자동차 산업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자동차 산업의 생명과 같은 신차 개발이 없었던 쌍용자동차는 그 충격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5천9백억 원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약속과 달리 쌍용자동차에 그 동안 십 원짜리 한 푼 투자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아니 순진하게 일만 했던 김미랑 씨는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어요. 희생은 가장 힘든 일을 하고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시작되잖아요. 약하고 힘없는 사람부터요. 저희 라인에는 비정규직만 일했어요. 그런데 저희 라인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전환 배치되어 오자 저희들보고 희망퇴직을 하라는 거예요. 지금 희망퇴직을 하면 몇 푼 챙겨 줄 건데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빈손으로 나갈 거라며 거의 협박에 가까워요. 아무도 희망퇴직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한 사람씩 불러 퇴직을 강요하는 거예요. 희망퇴직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기약 없는 휴직이래요. 휴업이나 휴직이라면 시한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건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것도 사나흘 전에 사무실로 불러서요. 칠 년을 일했는데, 무슨 잘못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희망퇴직이 아니라 강제 사직이고, 휴업이 아니라 강제 해고와 다를 바 없는 일들이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어났다. 2008년 11월 9일, 쌍용자동차 64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300명은 희망퇴직, 40명은 휴업이라는 명목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참세상 자료사진

“상하이차 자본은 쌍용차를 인수할 당시부터 먹고 튈 치밀한 계획을 세운 거죠. 정상적인 영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뜻은 손톱만큼도 없이 자동차 설계기술과 숙련인력을 빼내서 중국에서 자체 생산하려고 한 거죠.”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상하이차는 ‘먹튀 자본’이라고 주장한다.
성장을 하던 쌍용자동차는 상하이차가 인수한 뒤로 하락의 길로 들어선다. 2004년 SUV 부문 국내 시장 점유율 27.3%이던 쌍용자동차는 2008년 3분기 15.3%로 급락하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새로운 차를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지 못한 까닭에 시장에서 도태된 것이다.

상하이차는 인수 직후부터 쌍용자동차 휘발유 엔진공장의 중국 이전을 추진하였다. 또한 기술유출에 혈안이 되었다. 2005년 11월에 사장과 부사장이 바뀌었는데, 상하이차의 기술유출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2008년 7월, 검찰은 쌍용자동차의 디젤하이브리드 기술의 중국 유출 혐의로 쌍용자동차 기술연구소를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사 발표는 미루어졌다. 상하이차가 국영기업이라 외교적 마찰을 감안해 검찰이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디젤하이브리드 기술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진행하던 우리나라의 중요하고 전략적인 국책 사업이었다. 학계에서는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기술 격차가 4년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고 분석한다.

비정규직을 거리로 내몬 쌍용자동차는 정규직에 대해서도 공격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직원들의 복지 혜택을 전면 중단하고 17일부터 1월 4일까지 휴업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또한 강성노조 때문에 상하이차에서 자금지원을 하지 않는다며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먹튀 자본’임을 감추려고 했다.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자본을 철수하겠다는 협박도 스스럼없이 하였고, 12월 직원들의 급여를 지불하지 않겠다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처음부터 쌍용자동차 기술유출이 인수 목적이었으니, 이제 도망가겠다는 심뽀 아닙니까.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면서 말이에요. 치밀하게 준비된 거죠. 상하이차 자본은 투자는커녕 쌍용차에 줘야할 기술 이전료 천이백억 원도 전혀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연말에 육백 억인가를 보냈죠. 공장 옮기고, 쌍용에서 생산 중인 카이런 차를 거의 공짜로 가져가 중국에서 생산하고, 연구진 빼가고, 거기에 국책 기술까지 도둑질해 갔으니 중국 자본에 우리나라 전체가 농락을 당한 거죠. 처음 상하이차 자본이 인수한다고 할 때부터 기술유출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는데 정부에서는 이를 막으려는 대책보다는 팔아먹는데 앞장선 거예요.”

복기성 사무장은 쌍용자동차 문제는 상하이차 자본과 노동자간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이미 외국자본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40%, 시중은행주식의 65%를 잠식했고, 5대 주요 기업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외국의 투기자본에 한국경제와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정종남 투기자본 감시센터 기획국장은 “외국에서 들어온 자본은 대부분이 매매차익을 노리며 3년에서 5년을 주기로 자금을 회수하는 단기성 자금”이라고 한다. “투기자본은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을 손에 넣은 다음에는 어김없이 노동자 대량해고를 시도하고, 고배당, 유상 감자, 주식시장 교란 등의 수법을 동원해 고수익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른 투기자본들이 유상감자나 고율배당을 통해 현금을 빼돌렸다면 상하이차는 현금과 다를 바 없는 완성차 제작 기술을 빼내간 것이 차이”라고 한다.

2001년에 쌍용자동차에 입사한 유정희 씨의 처지는 더욱 안타깝다.

“남편이 8년 전에 사고로 왼쪽 팔을 다쳤어요. 망치로 때려도 아무 감각이 없는 팔인데, 계속 통증이 온데요. 통증이 시작되면 미치려고 해요. 실제로는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없는데 계속 그곳에 통증을 느낀다는 그런 병인데, 들어봤어요? 머리로 통증을 느끼는 거래요. 팔을 잘라도 계속 통증을 느낀다고 하니 잘라버릴 수도 없고, 정말 손 쓸 방법이 없어요. 8년 동안 큰 수술을 열 번씩이나 받고, 최후의 수단이라는 극한 수술도 받았는데......, 소용없어요. 지금은 뇌에 기계장치를 넣었는데, 팔에 느끼는 통증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거래요. 지금은 통증보다는 어지럼증을 느껴요. 일어서다가 픽 쓰러져 갈비뼈가 나가고, 또 일어서다 넘어지면 머리에 피가 고이고.......”

마루에서 자는 유정희 씨가 잠을 깰까봐 남편은 통증이 시작되면 방에서 손톱을 깨물며 밤새 고통을 참는다.

“아침에 방에 들어가면 손가락이 피범벅이에요. 덕지덕지 피가 붙어 있어요. 얼마나 참기 힘들었으면....... 며칠 뒤 방을 쓸면 손톱이 빠져서 바닥에 굴러다니고요. 그런데 이제 저까지 일터에서 쫓겨났으니, 어찌 살아야 할지....... 진짜 죽을 처지가 되니 아, 소리도 안 나와요. 그저 멍하게 있는 거예요.”

유정희 씨의 오른쪽 팔목은 깁스를 했다. 수근관증후군으로 왼쪽 손목에 이어 오른 손목 수술을 하고 인터뷰를 하러 나온 참이었다. 수근관증후군은 오랫동안 손목을 굽히거나 뻗치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통증이다. 손으로 가는 신경을 절단해 통증을 없애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공장에서 일할 때도 손에 통증이 오고 그랬는데, 당장 먹고 살려니, 제가 아니면 남편 병원비랑 생활비를 해결할 수 없으니 계속 일을 한 거죠. 그런데 직장에서 밀려나고 난 뒤로 통증이 갈수록 심해진 거예요. 손이 후끈거리고 시리고 저리고 전기 온 거처럼 찌릿찌릿하고,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파서 밤새도록 온 방안을 빙빙 돌아다니며 울고 그랬어요.”

산업재해 신청을 하라고 하니 산재신청이요? 하며 헛웃음을 흘린다.

“제가 하청 비정규직인데, 원청 직원이라면 모를까 어림없어요.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회사는 법정관리 신청하고 저는 강제 휴직 당한 상태인데...... 아예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냥 다시 일만 할 수 있다면 아무 생각 없어요. 일만 할 수 있다면 지금 임금 체불된 거 달라고 할 생각도 없어요.”

  일자리를 나누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얄팍한 급여 봉투를 나누라고 한다. 국가의 기술과 부를 중국 자본이 고스란히 훔쳐가는 것에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참세상 자료사진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임금을 받았고, 올 1월 임금은 50%만 받았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2월부터 계속 임금이 체불된 상태이다. 똑같은 위기를 맞아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감내해야 할 강도는 다르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1월 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이 법정 관리인으로 기술유출에 관여했던 쌍용자동차 임원을 선임하여 노동자들의 반발이 예견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에서 업체 사장들을 만나서 체불임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원청 가서 이야기하라고 해요. 원청을 찾아가면 법정관리 상태니까 법원에 가서 말하라고 하고요. 다 떠넘기기식이에요. 돈이 없어 정규직한테도 월급을 주지 못하겠다고 한 12월에도 쌍용차 중국인 사장은 젤 먼저 자신 월급을 챙겨 갔잖아요. 저희 비정규직 월급 다 합쳐야 그 사람 연봉도 못 되는데, 그걸 안 준 거잖아요. 쌍용자동차를 이 지경으로 만든 상하이차 자본과 기술유출에 협조한 쌍용자동차 경영진들이 최저임금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사재를 털어서라도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복기성 사무장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무작정 체불하는 경영진에 대해 분노를 터뜨린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유정희 씨와 같은 고통을 받을지 생각하기조차 싫다. 비정규직일수록 가진 것이 없을수록 힘이 약할수록 고통의 정도는 강할 것이 뻔하다. 운하를 판다고 재개발을 한다고 녹색 일자리를 만든다고 해서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의 신음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를 나누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얄팍한 급여 봉투를 나누라고 한다. 국가의 기술과 부를 중국 자본이 고스란히 훔쳐가는 것에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자신의 주머니에서는 한 푼도 내놓지 않고, 위기가 기회라며 더 많은 재산 축적에 눈먼 자들이.

아, 큰 한숨뿐인 대한민국. 그래도 버티고 살아남았으면 한다. 질기게 끈질기게 버텨 일하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날까지, 이 악물고 살아남았으면 한다. 봄이 없을 2009년을 넘어.
덧붙이는 말

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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