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면 달려 나갈 거야”

[미디어충청] 쌍용차 주먹밥에 비를 기다리는 노동자들

노-사 간의 옥상 새총공방이 끝난 27일 저녁8시경 미처 저녁을 먹지 못한 노동자들이 옥상에서 오랫만에 라면을 끊여 ‘주먹밥’을 먹고 있었다. 볼트가 날아다니고 최루액이 떨어지는 긴장속의 잠깐의 여유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쉬는 동안 쌍용차 사측은 대중가요를 틀었다.

  옥상 위에 쳐진 임시 천막. 한창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경찰, 용역, 사측의 공장진입을 방어하며 교대로 '근무'를 서고 있다. 저녁에는 선선하지만 밤에는 춥고, 낮에는 매우 덥다.

#1. 방송

“노조의 파업은 실패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20만이 죽는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너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KT노조도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MBC, 미디어충청, 사자후도 기대하지 마라.…”

평택시 칠괴동은 쌍용차 사측과 노조의 방송 공방으로 한 여름 매미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과유불급이라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자연의 선물도 넘치면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고 짜증을 유발한다. 하물며 적개심으로 가득찬 인간의 소리가 차고 넘치는데 오죽하겠는가.

사측은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장소를 이동하며 방송을 튼다. 직접 방송을, 때론 녹음된 테이프를 튼다. 개중에는 사측이 연 집회를 녹음해 방송을 하기도 해 마치 콘서트 실황 중계를 듣는 것 같다.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공장을 떠들썩하게 한다. 주,야 교대근무에 수면장애를 겪던 노동자들이 파업기간엔 경찰, 사측, 용역의 공장진입 시도와 사측의 방송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시도때도 없고 아무 맥락없이 틀어대는 사측의 방송을 노동자들은 사측 방송을 ‘대북방송’이라 했다.

“처음에는 또박또박한 말투로 방송하고 차분하게 존댓말 하다가 지들이 열 받아서 반말하고 소리 질러. 우리를 마구 짤라 놓더니 이제 지들이 짤릴 판이니까 궁지로 몰린 거지. 방송 듣고 있으면 꼭 대북방송 듣는 것 같아. 개구멍으로 나와라. 여기 오면 밥 줄께, 담배 줄께, 술 줄께… 밥은 우리도 먹어. 주먹밥이 아직 질리진 않아. 종종 아직 남아 있는 라면 몇 개 끓여 주먹밥 말아 먹으면 맛이 일품이지. 물론 술 한 잔 생각나기도 하는데… 기자가 좀 구해와 봐(웃음). 근데 방송 들으면서 처음엔 열 받았는데 이제 그러려니 해. 안쓰럽기도 하지 음악 방송 틀어줄 때는 같이 들으면서 천막에 누워 있어(웃음). 요즘엔 파업가가 입에서 더 맴돌긴 하지만.”

[출처: 노동과세계]

사측 방송은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회유와 협박’, 그리고 쌍용차 사태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상의 이유로 법정관리까지 오게 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대량의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파업과 부품사, 협력사의 도산 위기의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매각을 밀어붙인 정부와 상하이차의 기술유출 의혹, 산업은행의 특별 약정 해제 조치는 사라져버렸다. "관리자와 경영진은 자신들의 책임이 뭐였는지도 모르는가봐" 라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결국 니네(파업참가자) 때문에 다 죽는다는 내용이야. 자꾸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잖아.”

#2. '산 자'들과의 대화

대화중 파업중인 한 노동자에게 전화가 왔다. 소위 말하는 ‘산 자’란다. 천막에서는 ‘죽은 자’의 음성만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파. 이게 뭐냐. 새총으로 볼트, 너트 말고 소주PT나 날려라. 새총으로 돈 넣어 줄 테니까.(웃음) 참. 담배랑. 이게 뭐냐. 38선 긋고 총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오늘 너트 던진 거 보니까 5개씩 엮어서 던졌더만. 이게 살인무기지… 어제 밤새 (사측)천막에 불 켜져 있던데 혹시 이거 작업한거 아니야? 직장님이 뭐가 미안해. 그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산 자’는 옆 라인 직장이란다. 천막에 모인 노동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좋은 사람이지’라고 말했다. 또한 ‘전쟁’나면 앞에서 새총 쏘는 일 없고 회사 눈치에 뒤에서만 도와준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서로에게 새총을 쏘아도 함께 일했던 동료에 대한 신뢰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그걸 ‘미운 정’이라도 말한다.

“산 자 사이에서도 ‘새총’ 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런데 개 중에는 자기가 살아야 하니까 회사에 붙은 악질 관리자, 산 자들이 있지. 대부분의 산 자들은 노조와 대화하자고 한데. 결렬되는 한이 있더라도 대화 먼저 해야 한다는 거지. 선후배, 가족들끼리의 친분 관계가 모두 깨지고 있어. 거기서도 반반 갈려 모임도 깨졌어."

‘다시 얼굴 보고 일할 수 있을 까요?’하고 묻자 노동자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모아 “봐야죠”라고 말했다.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회사 정상화’의 내용이 노동자들이 파업을 접고 정상조업에 돌입하는 것이라면 천막에 모인 노동자들의 생각하는 ‘회사 정상화’의 내용은 노동자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먼저였다.

“처음에는 산 자들이 미웠어. 회사의 잣대로 보면 나보다 일도 많이 빵구 낸 사람이 살아남고… 근데 게네도 회사가 다 시키니까 하는 거지. 지금은 무덤덤해. 근데 아무개 전무는 나쁜 놈이야.”

#3. 인권

사측은 7월16일부터 음식물을 차단했고, 22일 물과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일주일마다 정문에서 2-3시간씩 경찰, 사측과 실랑이하며 어렵게 출입했던 의료진도 출입 금지다. 다만 의약품 일부가 경찰과 사측의 통제 하에 들어올 뿐이다. 사람의 몸은 있는 약대로 조절해서 병이 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된 약이 부족하거나 다치면 이들은 경찰의 연행을 무릅쓰고라도 어쩔 수 없이 평택공장 정문을 나서야 한다. “그래도(아파도) 끝까지 투쟁할 거예요” 라며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살기 위해 투쟁하는 것’ 이라며 동료를 설득해 밖으로 내보낸다.

  노동자들이 8일만에 라면을 끊여먹었다. 라면에 주먹밥을 말아먹으니 맛은 일품이었지만 설거지할 물이 없어 휴지로 닦아냈다. 한 여름에 건강이 걱정된다.

먹을 물도 없는데 땀나고 최루액으로 뒤덮인 몸을 씻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단수조치 초기엔 소화전 물로 해결했지만 사측은 소화전마저 끊었다. 공장을 돌아다니며 물을 모아 통에 두면 어느새 최루액이 뿌려져 ‘매운 물’이 되어 버린다. 최루액이 섞인 물인 줄도 모르고 기쁜 마음에 머리라도 감게 되면 한 동안 눈과 피부가 따가워 고생한다. 스티로폼을 녹이는 최루액을 경험한 노동자들에게 ‘최루’는 공포다.

“못 씻고 못 갈아입는 게 제일 힘들어. 옷과 양말을 주워 입기도 해. 몰래 그런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양말과 옷이 그대로 있으면 공장에서 나간 사람인줄 알고 입는 거지. 소화전 물이 한 번 나왔을 때가 있는데 머리 감은 물로 양말 빨고 했어. 그 물은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화장실 물로 사용했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좀 그래. 담배 한 대를 돌려 피기도 해. 근데 그거 알아? 그 한 모금이 꿀맛이야(웃음). 밥도 그런대로 먹을 만해. 맛있고. 근데 덥고 끈적거리고… 참, 그리고 공장진입 때문에 교대로 옥상에서 자는데, 졸리고, 잠자리가 불편해. 어제는 이슬내리고 추웠어. 겨울 잠바를 꺼내 입기도 하고 침낭 있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고. 그것마저 없는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해. 추우면 움직여야 하니까.”

27일 밤, 날이 습하고 더웠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가장 오랜 기간인 10일 동안 씻지 못한 노동자가 비가 오면 옷 벗고 뛰어나가 씻을 거라며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 반의 말을 던졌다.

“아무리 2MB라고 해도 비 오는 걸 막을 수 있겠어? 얼른 폭우가 쏟아져야 할 텐데…”

#4. 회유와 협박

파업 68일차 넘어가도 회사의 회유성, 협박성 짙은 전화와 문자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것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노동자가 “나는 파업하면서 연락 한 번도 안 왔는데. 완전히 버림 받았나 봐.”라고 말하며 오히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때론 사측 관리자, 직원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고등학교 선배한테 전화가 와 ‘부탁이다’며 공장 밖으로 나오라고 한단다.

“선배한테 전화 받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 선배가 관리자 한 명이랑 아는 사인데 내가 ‘형, 000한테 사주 받았지?’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고 끊었어. 그리고 나서 미안하다고, 몸 건강하라고 문자가 왔지.”

‘회유와 협박’의 연락과 문자를 받으면 노동자들은 아직도 기분이 ‘더럽다’고 했다. 물론 무덤덤하다는 노동자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에겐 아물지 않는 상처 같아 보였다.


“회사가 아무래도 밖에 있는 동료들을 세뇌시키는 것 같아. 통화하다보면 여기 있는 상황과 동 떨어진 말을 많이 해. ‘회사에서 들었는데 전화도 못 하게 한다더라. 감시가 심하더라’ 등. 그건 아니거든. 오해지. 힘들어도 참고 있는 이유가 생존권 지키려고 하는 건데. 노조에서 나가지 말라고 해서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조선일보에서 공장 밖으로 나간 사람 인터뷰 한 거 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어. 나가면 죽여 버린다고? 기자가 웃긴 놈이지. 내용도 모르면서…. 솔직히 전화와도 잘 안 받는 게 맨날 하는 소리가 ‘나오라’는 말뿐이야. 그거 듣기 싫어서 안 받을 때도 있거든.”

#5. 정부

노동자들에게는 박영태, 이유일 공동관리인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관리인이 정부, 상하이차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정부’라 생각한다. 매각 추진을 책임져야 할 곳, 자금 압박을 받는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곳, 상하이차의 지분을 소각해야 할 곳, 기술유출과 미수금을 밝혀내고 상하이차를 처벌해야 하는 곳. 모두 정부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서는 ‘파업’중이다. 공장 라인이 멈춘 듯 쌍용차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도 멈췄다. 대신 정부가 선택한 것은 ‘경찰병력 투입’을 통한 강제 진압이다.

“결국 정부가 열쇠를 쥐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산 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산 자’-‘죽은 자’라는 것만 다르지 이 생각은 비슷해. 관리직이야 지들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고. 우리도 세금 내는 국민이야.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해야지. 지역 기업, 사회 기업으로 만들어서 더 잘 살아보자고 하는데 왜 귀를 닫는지.”

  옥상 위에 쳐진 임시 천막이 어두워 손전등을 비취자 천막 위에 노동자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노동자는 이명박 정부와 김문수 도지사,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정치권의 행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안 나서는 것보다야 나서는 게 낫지만 여론을 의식해 ‘생색내기용’으로 나서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단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사실관계를 떠나 “쌍용차 파업참가자 200명 남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나서려면 진작 나섰어야지. 평택시민들 고생하게 해 놓고 이제와 뭘 한다고. 김문수 도지사는 자격박탈이야”

노동자들은 “똥 싼 놈이 똥 치워라”고 했다. ‘똥 싼’ 놈은 ‘정부’란다. 먹튀 상하이차에 쌍용차를 넘긴 것도 정부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만 짜른다며 그래서 억울하단다. 대한민국 국민이 정부로부터 버림받고 사측에게 공격당해 더 억울하다고 했다. 그들의 억울함은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까? 70여일 되가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은 노동자 목소리에 귀막고 파업하고 있는 정부를 향해 두드리는 신문고일지 모른다. 쌍용차 사태의 책임과 해법 모두 정부의 몫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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