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살인진압 재판이 20일 오후 2시에 서울중앙지법 417호에서 열렸지만 변호인단이 전원 퇴장하고 150여명의 방청객들이 재판부에 강하게 항의하면서 재판이 9월1일로 연기됐다. 재판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한양석) 심리로 열린 용산철거민 농성자 9명에 대한 공판에서 검찰 미공개 수사기록 3천 쪽을 공개하지 않은 채 재판부가 재판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한택근 변호인은 재판부의 재판강행을 놓고 “형사소송법을 읽고 또 읽어도 검사가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면서 “검찰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 놨다”고 밝혔다. 한 변호인은 “이번 헌법소원은 사실상 위헌제청심판 청구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용산사건의 기록을 안 내는 문제가 아니라 무수한 사건에서 검찰이 자기에게 불리한 기록을 내지 않아도 되는지, 안되는지를 판단하는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변호인은 또 “이미 천 건이 넘는 촛불 사건 대부분 공판이 중지된 이유는 야간 촛불집회로 처벌하는 것이 합헌인지 위헌인지를 판단한 후에 한다는 것”이라며 “용산 기록을 내느냐, 안내냐가 합헌이냐 위헌이냐를 판단할 때까지 재판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석으로 나올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권영국 변호인도 “피고인들의 위법 사항을 적법하다고 주장 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부차적인 형량조정을 하려는 것도 아니”라며 “피고인에게 걸린 죄목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라면 공무집행이 적법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사실관계를 알기 위해선 수사기록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인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데 재판진행이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고 싶다. 이 재판이 양심에 따라 이루어 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답이 없다. 이 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고 피고인이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재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미 검찰이 공개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어떻게 처리 하겠다고 밝혔다. 더 이상 법원의 견해를 밝힐 이유가 없다. 변호인과 견해가 다르다. 변호인이 변호를 거부할 거면 나가시라”고 퇴정을 명령했다. 판사의 말이 떨어지자 변호인단은 재판정을 떠났다. 3개월 만에 열린 재판 시작 20여 분만이었다.
변호인이 재판정에서 퇴장하자 방청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방청객들을 향해 재판부의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구금기간이 정해져 한없이 재판을 연기할 수 없어 피고인을 위해서라도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행의사를 밝혔다. 재판부의 말은 곧이어 끊어졌다. 누군가 “변호사 없이 어떻게 재판을 하느냐?”고 소리쳤다. 술렁이는 소리는 더 높아졌고 몇몇 방청객들은 재판장을 나서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판사는 이어 방청객들을 향해 “아시다시피 3천 쪽 증거에 공개 거부한 것에 대해 어떻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 재판부는 판단했다”고 말했지만 변호인단이 떠난 재판정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방청객 한 명이 방청석에서 일어나 판사에게 3천 쪽을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사가 “앉으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른 방청객이 “이게 재판이야”라며 재판정을 나갔다. 재판부에 대한 강한 반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도 들려왔다.
판사는 다시 방청객에게 “재판부 판단에 대해 변호인은 재판부 이상의 요구를 하고 있다. 법적 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은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상물을 조사 하겠다”고 말하고 재판을 강행했다.
그러자 150여명의 방청객들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3천 쪽을 내 놔” “이게 법치국가냐” 라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417호 법정이 철거민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눈 가리고 아웅이냐, 사법부가 썩었다”
결국 재판부는 30여 분간 휴정을 선언하고 오후 3시에 속개한다고 밝혔다. 방청객 한 명은 퇴장하는 검사에게 3천 쪽을 내 놓으라고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2시 50분께 휴정한 재판장에 국선변호사 한명이 옆문에서 들어와 앉았다. 지난 5월 변호인단이 공판기일 변경을 요구하자 그때 선임된 변호사였다. 재판부는 3시에 다시 재판장에 들어왔지만 “오늘 재판을 속개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며 다음 공판을 9월 1일 오후 2시로 잡았다.
방청객들은 “9월 1일 날 해도 3천 쪽 없이 재판은 안된다”, “오늘 재판을 못한 것은 자기네들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고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다. 권영국 변호사는 “다음 공판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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