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재판에서 허점 드러낸 경찰특공대

[기자의 눈] 현장의 위험 상황에 대처 못하고 지휘부는 안일

지난 1월 20일 경찰특공대의 용산철거민 망루 농성 진압 작전은 실패한 작전이었다. 테러리스트도 아닌 평범한 세입자들을 상대로 한 작전이었지만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 등 경찰 지휘부는 특공대 투입의 정당성으로 기동대보다는 특공대가 신속하고 안전하게 진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경찰 지휘부의 주장처럼 더 안전하다던 특공대 투입이 왜 이렇게 많은 인명피해를 냈을까? 지난 9월 15일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한양석)가 본격적으로 진행한 경찰 특공대 증인신문과정에는 작전 실패 원인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또 재판이 진행될수록 경찰특공대 작전의 허점도 노출됐다. 노동자 서민이 생존권을 주장하는 시위 현장에 협상을 중재하기 보다는 경찰특공대 투입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우리 사회가 새롭게 검토해야 할 과제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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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부와 대원들의 무전교신 단절 속에 위험물질 방치

특공대 작전의 허점은 지휘부와 망루를 지휘하는 제대장들 간에도 무전교신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지휘부 스스로의 주장에 있다. 박삼복 특공대장은 1차 진입 당시 망루 내부에 불이 난 사실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1차 진입 시점, 2차 진입 시점도 몰랐다. 특공대의 특성상 작전에 들어가면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체 진압을 지휘한 김수정 차장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몰랐다고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작전은 멀쩡한 세입자와 특공대원 1명을 죽인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망루 밖으로 보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지휘부와 특공대가 내부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신속한 진압만 강조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당시 망루진압작전에 투입된 특공대원들의 증언에는 ‘이랬더라면’하는 작전 수행의 아쉬움이 많았다.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 1제대의 한 대원은 변호인이 ‘빨리 진압하라고 해서 이상한 상황인데도 2차 진입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심문에 “제가 지휘관인데 그런 상황이면 진입을 보류한다. 그러나 지휘관은 밖이라 상황을 몰라서 그런듯하다”고 말했다.

특공대원들은 1차 진입 후 8-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지만, 망루 내부의 세녹스를 확인할 생각을 안 했다고 말했다. 시너 같은 것이 흘러내린 것을 봤다는 대원의 증언은 있었지만 누구도 폐쇄된 망루 안에서 유증기(기름증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특공대는 망루 내부에 발전기가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이는 박삼복 특공대장이 전날 밤 11시께 확인한 세녹스 20리터 통 60개가 있다는 정보보고를 ‘대원들이 잠잘 시간이라 특별히 알리지 않았다’는 증언에 나타난 것처럼 결정적인 문제가 됐다. 신 모 1제대장도 “2차 진입 과정에서 기름을 붓는 것을 봤지만 물대포와 물이 계속 흘렀고 바닥에 불이 안 붙는 것을 봤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세녹스에 대한 대책은 전혀 세우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특공대원들은 작전 투입 전에 두 번의 특공대 교육이 있었지만 세녹스 유증기에 대한 교육도 못 받았고 기초 상식도 없었다. 다만 화염병이 있으니 안전에 유념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2차 망루 진입 당시 많은 대원이 위험성과 구토, 심지어는 환각 증세까지 느낄 정도로 유증기가 꽉 차 있었지만 대원들은 무전으로도 서로 위험을 확인하거나 경고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나 무전으로 보고할 생각은 안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한결같이 “특공대는 최대한 빠른 진압이 목적이라 그런 생각은 안했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농성자들을 해산시키기 보다는 신속한 진압이 더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한 대원은 “빨리 진압을 해야 하는데 물러서면 장기화 하니까 보루라 생각해서 끝까지 간 것이다. 특공대는 위험한 상황을 극복하고 안 물러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테러범도 아닌데 신속 진압 강박에 갇힌 특공대원들

[출처: 경찰특공대 홈페이지]
이날 세입자 진압이 최대한 신속해야 했는지도 여전히 논란이다. 이번 작전이 흉기로 인질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악범이나, 폭탄 테러범 등 당장 인명 살상이 동반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신속함을 요하는 작전이라면 위험이 감지되어도 특공대의 특성상 물러서기 어렵다. 그러나 까라면 깐다는 특공대의 강인함이 오히려 이번 작전에는 대형참사를 부르는 원인이 됐다. 세입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농성장에 시행되어야 할 작전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미 1차 진입 때 큰 불길이 일고 난 뒤지만 철거민을 빼고 경찰 어느 누구도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 건물 옥상에 직접 투입돼 작전을 지휘한 1제대장도 망루 내부 상황을 점검하지 않았다. 1제대장은 “안전하고 신속한 검거가 주 목적이라 세밀하게 주변을 살피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특공대 투입을 결정한 지휘부의 문제점은 더 크다. 증인으로 나온 경찰 지휘부의 증언대로라면 지휘부는 전국철거민연합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선입견을 통해 특공대 조기투입을 결정했다. 이전 다른 지역의 철거 투쟁 현장을 통해 무조건 폭력조직으로만 생각했고 장기화 할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또 망루가 세워진 곳이 한강로 도로 주변이라 지나는 차량과 행인에게 위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철연의 망루농성은 무작정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개발조합과 구청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협상전술이다. 이제까지 전철연의 망루에서 큰 싸움이 있었던 것은 협상보다는 용역업체가 물리력을 통해 망루 해체를 먼저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4일 증인으로 나온 철거민 정영신 씨는 “조합은 우리와 협상을 하려 하기보다는 용역을 동원해 쫓아내려고 만 했다. 용역들의 폭력에 시달려도 경찰은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아 전철연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6일 증인으로 나선 이명선 칼라TV 리포터는 “경찰과 용역이 자극하지 않으면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나가는 시민을 향한 무차별 투척이 아닌 자기방어적인 수단으로 화염병을 던졌다는 것이다.

협상을 주선하려 했던 서울지방경찰청의 정보계 형사도 “협상 한 번 못해보고 그런 결과가 나와 참담하다”고 말했다.

증인으로 나왔던 남기문 민주노동당 용산지역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번 비극을 막을 사회적기제가 많았는데 합의하려는 노력도 없었고 그것을 도출하지 않았다. 합의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공대 노동현장 투입 적절한지 사회적 논의도 필요

이번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특공대 투입현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새롭게 논의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박삼복 특공대장에 따르면 특별한 테러가 없는 한국에서 특공대 투입은 인질극 외에 대다수가 노사분규 현장이었다. 특히 2007년엔 망루농성도 아닌 뉴코아 이랜드 농성장 강제해산, 2008년 기륭 문형 지주(비계) 농성 강제 진압, 콜트 콜텍 본사점거 농성장 투입 등의 현장은 기동대의 출동으로도 충분한 노사분규 현장이었다. 이들 분규 현장은 화염병이나 돌은 전혀 없었고 현수막과 맨몸만 있던 곳이다.

이런 현장에도 특공대가 투입된 이유는 안전한 신속진압이다. 문제는 이 현장들 모두 평화로운 노사대화를 원하던 곳이다. 대부분 농성자들은 거센 저항을 하지 않았던 곳이다. 문제는 여기서도 발생했다. 이런 농성장에 투입 됐던 경험만으로 특공대원들은 이번 용산4구역 농성에도 관성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박삼복 특공대장은 “보통 다른 현장에선 특공대의 공무집행에 지시를 따랐다. 여기도 사실상 따라줘야 하는데 격렬했다”고 주장했다. 이전 상황과 많이 다른 방식의 저항이 있는데도 작전 중간에 협상 등 다른 방식의 해산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것은 특공대 투입의 치명적 결함이 가져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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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은 괴로움 토로, 진술번복, 지휘부는 기억 안 나고 무조건 정당

지난 9월 24일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 2제대의 한 팀장은 2차 망루 진입 때 사망한 고 김남훈 경사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2차 진입 당시 세녹스 유증기로 인한 심장이상으로 호흡곤란을 느낀 그가 망루 밖으로 나가던 중 스쳐 지나가던 고 김남훈 경사는 “팀장님도 오셨군요”라는 말을 그에게 남겼다.

그는 작년 11월 중순까지 고 김남훈 경사와 같은 제대에서 교육을 시키고 함께 생활했던 사이다. 그래서 목소리만 들어도 아는 사이였다. 이 팀장은 참사이후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고 재판장에서도 괴로운 모습이었다. 심적 고통 탓에 우울증 증세도 보였다. 그는 이런 괴로움 속에서도 망루 안에서 들었던 ‘다 죽어’라는 소리에 대한 진술을 바꿨다. 처음엔 ‘다 죽이겠다’는 뜻으로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다 피하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에 철거민들에게 불리하게 진술한 것은 ‘철거민들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1제대장도 화염병을 처음엔 본 것처럼 진술했지만 역시 ‘화염병으로 추정 했다’며 진술을 바꿨다. 그도 “같은 직원의 영결식 등이 있어 그랬다”며 우회적으로 철거민들에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을 시인했다.

세입자와 조합등과 협상을 주선했던 서울경찰청 정보과 소속 직원은 이번 참사에 대한 자책감으로 참사 발생 후 스스로 지원해 서울경찰청을 떠나 일선경찰서로 갔다.

반면 김수정 차장, 박삼복 특공대장 등은 증인석에서 주로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또 특이 사항을 무전으로 보고받지 못해 아무것도 몰랐다며 사실상 참사의 책임을 현장에 투입된 특공대원과 제대장에게 떠넘기다 시피 했다. 이들은 ‘만일 지금처럼 세녹스와 발전기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도 특공대 조기 투입이 정당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는 “특공대 투입은 정당했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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