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사변적, 비현실적 성매매 합법화론자들에게
[기고] 성매매특별법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을 비판한다
Jaewon lenin@hanmir.com, moscow4hanmail.net / 2004년12월19일 2시15분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되어 성매매 단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후 두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동안 이 법에 대해 수많은 논쟁 아닌 논쟁이 벌어져 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동시에 안타깝게도 문제의 본질은 사라진 채, 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여성 단체들은 진보 단체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남성 성욕 중심적 사회에서 자신들의 성적 권력과 성적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전방위적 십자포화를 맞으며 외로이 싸우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언론에서는 성매매의 음성화, 성범죄 증가 우려, 그리고 평소에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지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걱정해 주는 기사들을 끈질기게 내보내더니 그에 뒤이어 제주도 섹스 관광객 감소 등 구체적 예들을 들며 경제 위기 타령이 지겹도록 이어졌었다. 종종 선진적 성 개념의 수호자인 양 가면을 써 가며 이 법이 성적 자유에 대한 억압인 것으로 호도하기도 하던 언론들은 이도 여의치 않자 이 법 시행으로 남성의 성욕을 풀 길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노골적으로 남성 우월주의를 넘어 남성 성욕 중심주의적 사고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의 유사한 망언을 가능케 한 토대를 이루기도 했다.
권력과 부를 통제하는 지배 집단 남성들의 여성과 인간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보여주는 망언과 망발은 좌 승희 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박 용성 상공회의소 회장, 그리고 이 헌재 경제 부총리 등의 발언으로 추태의 절정에 이르렀다. 성매매 방지법이 인간의 성욕을 막고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좌파적 발상에서 나온 법이라는 좌 승희 원장과 찌거기를 버릴 수 있는 하수구를 막아 한국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는 박 용성 회장의 어처구니 없는 망발에 이어 여성의 성을 매매해서라도 경제의 확실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국의 경제 정책 총괄자 이 헌재 부총리의 심각한 몰상식적 망언이 잇다랐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이러한 발언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공격적으로 공개 석상에서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일부 타락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잘못된 생각이 아님을 보여 준다. 상당수 성인 남성들의 인식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다수 남성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자신했기에 이를 믿고 과감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대적점에 있어야 할 진보 진영은 너무나도 무지하고 무관심했으며 따라서 무력했다. 아예 최근에는 성매매 금지법이란 아예 국가에 의한 노동자 탄압, 국가의 자기 윤리 강요, 그리고 심지어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자 분리 정책이라는 극단적으로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매매 금지법이란 빈곤층 출신 여성들의 생존권 개념도 모르는 유학파 먹물 엘리트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적인 법에 불과하며, 이 법은 기독교적 금욕주의 혹은 도덕주의적 가치관 하에서 만들어진 법으로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저해하려는 시도에 불과하기에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심지어 성매매 종사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시민’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라고 말하며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시민권’ 회복 차원에서 이들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저항 세력으로 지지 엄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성매매 여성들은 ‘성 노동자’이기에 노동법과 의료 혜택을 공식적으로 받는 ‘합법화’를 통해야만 폭력과 갈취로부터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결론을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온 라인 상에서뿐 아니라 현실 운동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상당수이다. 성매매 문제 이외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뛰어난 지식과 작문 능력을 바탕으로 좌파적 관점과 민중의 입장에서 사안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싸워 나가자고 하던 이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들이 유독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극단적으로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직업 운동가도 아니며 사회 운동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특정 사회 계급이나 계층, 집단을 역사 변화의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에 의한 사회 변혁이라는 이상을 버리고 난 후에는 심지어 그러한 계급, 계층, 집단 내에서도 소외 받고 억압 받으며 물질적으로도 저열한 상태에 놓인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져 왔다. 즉 사회 변혁과는 별로 상관 없지만 빈곤과 불평등, 양극화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는 사회 집단의 현실을 고민해 왔던 것이다. 성매매 문제를 성매매 자체로 보지 말고, ‘생물학적 여성’의 문제로 보기 이전에 억압과 차별과 빈곤과 소외와 불평등의 문제로 보면 절대로 그러한 관념과 사변에 찌들린 주장을 할 수 없다.
성매매가 노동인지 아닌지에 대해 머리 속에서만 그리는 것이 어찌 변혁 운동가의 자세인가? 만일 그들 중 자신의 부인이나 딸, 주변 친지들에게 자신있게 권하는 인간이 있다면 난 그를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못 할 위인이라면 제발 그 입을 그만 다물라. 세상에 설사 하룻밤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섹스를 매일 해야 하는 일만큼 비인권적인 것이 어디 있나?
먼저 성매매 문제를 다룸에 있어 모든 문제를 ‘판매되지 않는 것이 없는 체제’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그 어느 것보다 노골적인 여성의 상품화와 성매매는 불가분이기 때문에 체제 자체를 변혁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은 공상 소설의 영역이기 떄문에 문제 의식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므로 일단 제외한다.
진정으로 사회 변혁을 위해 싸우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라면 성매매를 둘러싼 문제에서 성매매 그 자체만을 두고 관념의 유희를 할 수는 없다. 성매매가 사회적 맥락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단순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 남녀의 성교’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자발적이고 대가가 지불되었을 경우 그저 ‘노동에 대한 대가’이고 여타의 서비스처럼 ‘서비스 혜택’을 받은 상행위에 불과한 것인가? 특히 극단적으로 성차별적이고 여성 모멸적인 한국적 성매매 현실에서 전체 성매매 산업의 단 단위 퍼센트도 차지하지 않는 집창촌에서의 ‘직접 성매매’만을 떠올리며 성교 행위만을 두고 마치 성행위란 자연스러운 것인데 국가가 간섭을 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한국 여성들이 처해진 현실을 잘 아는 진보 운동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추상적인 논의를 우선적으로 한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어찌 성매매 문제가 성매매만의 문제인가? 성매매 그 행위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분석의 대상인가? 성매매를 둘러 싼 혹은 성매매에 이르기까지의 불평등한 사회 관계와 극단적인 여성 비하적 남성 성욕중심주의적 사회 구조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성매매 자체 혹은 성매매에서 성행위만 떼어 내어 왈가왈부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실제로 심지어 과학적 운동을 한다는 이들 중에 성적 자유와 성의 구매와 판매 행위를 혼동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성매매를 일종의 계약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엇이든지 판매되는 사회에서 그 노동이 다른 노동과 무슨 질적인 차이가 있느냐는 지독히 관념적인 반여성적인 이들도 있다. 시장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는 사람들이 유독 이 문제에서만큼은 아주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시장주의자의 입장에서 서 있음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는 쌀 개방에 반대해서도 안 되고 비정규직이 고용의 주 형태로 되어 가는 것도 저지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의 의도 자체라기 보다는 그러한 의도와는 상관없는 자본주의의 질적인 변화에 따른 고용 형태와 직업의 변화이며 계급 구조의 변화이기 떄문이다. (물론 자본은 그러한 상황을 절대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만…) 왜 이들은 이렇게 시장의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도 인간 문제에 있어서는 지극히 자유주의적이고 극단적 시장주의적 논리만을 앞세우는가?
많은 진보 운동 진영의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가 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세계는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진보 운동을 하는 우리들은 시장이 가져 오는 횡포와 폭력에 저항하는 것을 그 어느 것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이기 떄문에…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은 사고 파는 존재가 되었지만 적어도 그 조건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싸워 왔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이들은 인간을 특정 집단의 독점적 쾌락을 위해 상품으로 사고 파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인권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인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난 교육이나 의료보다 인간이 그것도 여성이 마구 유린되어 가며 팔리는 게 더 걱정스럽다. 그것도 아주 일방적이고 모멸적으로.
이들 중 상당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화두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어찌 이러한 이들이 세계화 과정에서의 세계적 차원의 ‘빈곤의 여성화’ 현상을 보지 않고 성매매 합법화를 논하고 성매매 특별법을 저주하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합법화된 나라에서의 상황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비판 의식 없이 마치 합법화만이 인권을 위하는 것인 양 강변하는 모습들이다.
네덜란드 등 일부 합법화된 국가들에서 이러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구 사회주의권이나 구 식민지 출신 빈곤 여성들, 인신 매매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진다. 합법화되지 않은 부분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 산업의 성격 상 많은 합법 업주들이 뒤에서 몰래 비합법적 성매매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현실은 고려에도 없다. 아니 이러한 실제 상황을 모르고 논리의 전개 순서에 따라 자신의 주장만을 강변한다.
이들 국가에서 여성들의 보호의 목적 이외, 성매매 산업의 축소를 의도하기도 한 합법화가 정 반대로 더욱 성산업의 확대를 가져 온 사실은 언급도 없다. 정말이지 성매매 합법화가 폭력과 갈취, 협박을 막는 길이라는 사람들은 합법화 된 국가들에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분석하고 주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일부 인자들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국가의 여성 분할 음모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 것을 기억한다. 심지어 국가 보안법과 성매매 방지법을 비교하며 국가가 강제한 국가가 요구하는 사회적 의식 통제라는 측면에서 같은 질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 비약적 주장도 기억한다. 심지어 돈으로 팔려 가는 결혼과 성매매가 무슨 차이가 있냐면서 거품을 무는 어설픈 엥겔스 책 탐독자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법 집행의 결과로 경찰력만이 증가하여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는 데 용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성매매 특별법을 계기로 성매매 특별법 그 자체나 성매매 자체가 아니라 편견과 궤변으로 가득한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다양다기한 남성 성욕중심적 여론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이 문제는 국가라는 주체의 문제와는 상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국가의 의도에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성매매, 아니 여성 차별적, 모멸적 성 문화에 대해서만큼은 국가의 의도 분석 자체에 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수 천년을 세뇌당해 온 남성성욕 중심 사회의 대변혁을 가져 올 수 있다면 러시아 1차 혁명 시의 정부 간첩 가퐁의 역할과 같은 것도 활용하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기 떄문이다.
단도 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다. 나는 심지어 성매매가 전혀 없더라도 여자를 끼고 주물러야 술 맛이 나고 내 돈 내가 주고 만지고 주무른다는 데 무슨 방해냐는 한국식 남성 성욕 중심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한국의 성매매 산업, 형태에 반대한다. 하물며 성매매와 관련되어서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성폭력과 성매매는 동일한 현상의 양면이다. 성매매 할 곳이 없어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쉽게 할 수 있기 떄문에 성매매도 늘어 나는 것이다. 150만 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있는 대한민국은 성폭력과 성범죄에 있어 여전히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일부 남성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기업 등에 의해 조직적이고 공공연하게 성 접대를 포함한 접대가 구조화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진보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발전은 불균형하게 이루어지며 의식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을 너무나도 쉽게 간과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어찌 동성연애자들이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대규모 시가 행진, 축제를 할 수 있는 나라와 여성이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면 아직도 생면부지의 남자가 와서 욕을 해 대는 나라, 그리고 아직도 여성들은 외출 시 뭔가를 쓰고 나가야 되는 나라에서의 상황을 무시한 채 논지를 펼 수 있을까? 물론 보편적이 일반적인 인권과 인류의 발전 방향과 내용은 존재한다. 또한 언제나 해당 지역 사회의 룰에만 머물 수는 없다. 인류 보편적 진보를 위해 늘 선도적으로 그 내용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임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찌꺼기를 마구 배설할 이유는 없다.
비현실적 주장 역시 한탄스러운 수준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그래서 전공노는 그렇게 탄압을 받았나? 시민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은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 권리로 역할하고 있는가? 마치 합법화가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양 공상하는 이들이 현실에 발을 딛고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본론과는 상관없이 주구장창 성적 자유에 대한 강의를 늘어 놓다가 은근슬쩍 성매매도 이와 별 질적 차이가 없는 듯한 주장으로 넘어가곤 한다.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성매매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 극단적 성차별적, 여성 모멸적 ‘행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없이 그저 ‘수많은 노동의 형태’ 중의 하나로 주장하기 위해 그보다 더 열악한 노동의 예를 들며 ‘질적인 차이 없음’을 강변한다. 나는 솔직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직업으로 노동자로 명명하든 뭐든 상관하지 않는다. 어떻게 규정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비과학적 추상적 관념일 뿐이니까.
무슨 구멍 가게 주인 같은 업주라는 단어를 분석 없이 그저 베껴 써 대는 것도 황당하다. 폭력 조직과 같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들이 특별한 노동없이 막대한 이윤을 받아 먹고 기생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성매매 산업 관련 부분이다. 어떤 이는 업주들이 의외로 보통 사람 같은 인상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그 어느 누구도 인간 자체를 미워해서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무리 마하트마 간디라도 그가 이라크 주둔 미국 군대에 복무한다면 그는 인간 간디가 아니라 미 점령군 군대의 군인일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무슨 이유에서든 성매매 산업에 뛰어 들어 여성들을 팔아 이익을 남겨 먹는다면 그는 성인 간디가 아니라 범죄자 업주일 뿐인 것이다.
사실 관계에 대한 왜곡과 단정은 더욱 심각하다. 성녀- 창녀의 개념 구별, 피해자 개념은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 150만이라는 여성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창피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도 엉뚱하게 결국 그 여성들이 창피한 존재라고 하는 것이라는 결론은 도무지 어떤 머리 속에서 나온 건지 정말 궁금하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자살 테러를 감행해 오는 것을 보고 있다.전후 맥락, 주변 분석 없이 보자면 한 마디로 이는 일말의 동정도 살 수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반인간적 테러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세계 활동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잔학무도한 테러보다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일까?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 민간인 테러를 옹호라도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한 잔인하고 무모한 투쟁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는 그 근본 원인에 더욱 문제를 제기하기 떄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비판에 일차적으로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성매매 문제 역시 본질은 같다.. 여성의 빈곤, 일정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이들조차 자신을 실현하기 힘든 사회, 하물며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과 학력이 없거나 청소년기 일시적인 충동으로 그러한 기능을 갖추지 못 한 여성들을 무서운 힘으로 빨아 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도처에 널린 남성 성욕 중심 사회를 문제제기하고 변혁하는 일보다 진보 진영에게 더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자발적 성매매 여성 발생의 사회 구조적 맥락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운동을 한다면서도 인간과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관념론적 운동가들의 심각한 자화상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오랜 동안 사형수들의 마지막을 지켜봐 온 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분이 한 말이 있다. 단 한명의 억울한 사형수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생명과 인권 차원에서도 자신은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단 한 명의 강제적 노예적 상태의 성매매가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위해 싸워야 한다. 성매매 문제에 있어 자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극히 일부가 반강제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 운동하는 이들이 이를 무시하고 대다수가 자발적이기 때문에 운운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100% 자발적이라 할지라도 업주의 협박이나 선불금 따위의 강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성매매 산업을 반대한다. 위에서도 누차 강조했듯이 특히 남한에서의 성매매는 성매매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합법화된 업소에서의 종사자가 만 단위도 안 되는 지역과 150만이 넘는 국가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성매매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여성이 남성의 출세와 성공과 인맥 만들기, 그리고 성욕을 풀기 위해서 철저하게 일방적인 도구가 되어 구조화된 우리 나라 성매매 관련 조직/산업/문화와 단순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사업비의 일부분으로 공식적 접대비가 나와 성매매가 포함된 접대를 공공연하게 대규모적으로 구조적으로 하는 우리네 상황이 어찌 성행위 그 자체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몇몇 진보인사들의 착각 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이며 여성에 대한 죄악이다.
마약, 전쟁, 핵무기 개발, 강도 등 각종 범죄 등 금지해도 쉽게 금지가 되지 않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들이 유독 이 문제에서 만큼은 당장에 점성술사나 초능력자가 되어 결과를 예측하기를 바란다. 단 한 번도 역사에서 근절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완전히 근절하지 못 할 건데 왜 우리는 전쟁 반대를 외치나? 왜 강도범을 잡아 넣는가?
혹자는 성매매를 식욕이나 배설욕 등 여타의 욕구와 비교하기도 한다. 혹은 사고 싶은 옷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현상을 왜 막냐는 건데 사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훔쳐서도 안되고 돈이 없을 때 자제하는 것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이다. 소변이 급하다고 대로에서 일을 보지 않고 참고 장소를 찾는 것이 그리도 이상한 건가?
진정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의도에 저항하려 한다면 오히려 정 반대로 국가가 합법화로 성산업에서 획득하는 불법적 비생산적 이익에 저항하여야 하거늘 도대체 지배자들에게 무슨 놈의 이론적 바탕들을 대 주고 있는지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국가의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고 싶다면 성산업의 합법적 확대로 여성의 하위 계층, 그리고 빈곤한 국가 출신의 빈곤한 제 3세계, 주변부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끝없이 합법적 블랙홀로 빠져 들게 하고 있는 그 국가의 의도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 성매매 산업의 단 단위 퍼센트도 안 되는 집창촌에서의 성매매가 아니라 가진자들과 지배자들이 즐겨 찾는 고급 룸살롱이나 요정 등에서의 성매매를 집요하게 단속하지 않는 국가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데 정력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은 현재 러시아에서 한인들에 의한 성매매 조직/산업/문화에 대해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 러시아 성매매 문제에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아 거기에까지는 미치지 못 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일부 진보 관념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은 구태의연한 도덕 운동, 종교적 금욕주의, 그리고 여성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반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 말대로 하자면 성매매 반대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네 보다 훨씬 생존권 문제가 심각한 여성들을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에게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해 달라는 성매매 합법화 운동을 해야 되는 것인가? 그리고 노동으로 인정받은 뒤에는 더 나은 조건을 위해 노동 이주의 자유를 달라고 주장해서 이 곳보다는 나은 대한민국으로 자유롭게 들어 와 이주 노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성욕을 가지고 있다. 단지 수 천년 동안의 교육과 세뇌 탓으로 여성의 성욕 논의는 금기시되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여성은 왜 남성을 사는 이들이 거의 없는가? 이에 대한 답만으로도 우리는 현실에서의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성 권력의 관계를 가늠하고도 남을 것이다. 적어도 현대 성 산업 관계에서 설사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을 할 수 있을 지라도 결단코 그들의 고용주로부터 그녀들은 자유롭지 못 할 것이다. 또한 성의 특성 상 해괴한 상품을 만들어 내고 팔으라는 남성 구매자들의 요구는 한도 없이 확대될 것이다.
성은 성스러운 것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팔고 사는 것이 되고 그 과정에 권력이 개입한다면 이는 성적 자유나 성 개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교정과 수정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성매매 특별법의 근본 정신 역시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도리어 그러한 이분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보주의자라 자처하는 일부 관념론자들일 뿐이다. 종교적 도덕적 금욕주의의 혐의를 씌운다거나 정 반대로 성매매 여성들을 천하게 여기어서 차별하는 것이라 억측하고 강변하는 일부 관념론적 진보주의자들의 사변적 궤변에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진보적이라 자청하는 이들이 성 노동자로 칭하든 그들이 성매매 여성들의 자율적인 운동을 지지하든 그들의 관념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일부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뭐라고 규정을 하든 수많은 남성 성구매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을 비웃으며 오늘도 그들의 배설을 위해 성매매 여성들을 '하수구'로 대할 것이다. 팩트는 똑같은데 지칭하는 게 달라진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일부 자칭 진보주의자들이여! 제발 자신의 딸이 아니고 부인이 아니고 어머니가 아니라고 머리만 굴려 거대한 진보의 흐름을 막지 말아라.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국가가 빈곤 여성의 생존권을 공격한다는 따위의 공허한 궤변이 아니라, 국내에서 조금 성매매가 줄었다고 해외로 원정 성매매를 떠나는 가진 자들과 성권력 수호자들의 국제적 범죄를 묵인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에 문제 제기하고, 지배자들의 성 향유 구조는 증거가 불충분하기에 단속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식으로 그다지 단속에 관심이 없는 국가의 말 그대로의 ‘이중적 행위’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극단적 여성 차별적 사회 구조와 인식, 그리고 여성을 남성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지배자들과 부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길이다.수 천년 간의 세뇌되고 왜곡된 문제의 교정 과정은 험난할 수 밖에 없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 제발 그 현상 자체만으로 관념의 유희를 즐기는 일이 앞으로는 없기를 진심으로 진보주의자라 자칭하는 이들에게 간곡히 요청하는 바이다.
법 시행 이후 언론에서는 성매매의 음성화, 성범죄 증가 우려, 그리고 평소에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지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걱정해 주는 기사들을 끈질기게 내보내더니 그에 뒤이어 제주도 섹스 관광객 감소 등 구체적 예들을 들며 경제 위기 타령이 지겹도록 이어졌었다. 종종 선진적 성 개념의 수호자인 양 가면을 써 가며 이 법이 성적 자유에 대한 억압인 것으로 호도하기도 하던 언론들은 이도 여의치 않자 이 법 시행으로 남성의 성욕을 풀 길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노골적으로 남성 우월주의를 넘어 남성 성욕 중심주의적 사고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의 유사한 망언을 가능케 한 토대를 이루기도 했다.
권력과 부를 통제하는 지배 집단 남성들의 여성과 인간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보여주는 망언과 망발은 좌 승희 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박 용성 상공회의소 회장, 그리고 이 헌재 경제 부총리 등의 발언으로 추태의 절정에 이르렀다. 성매매 방지법이 인간의 성욕을 막고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좌파적 발상에서 나온 법이라는 좌 승희 원장과 찌거기를 버릴 수 있는 하수구를 막아 한국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는 박 용성 회장의 어처구니 없는 망발에 이어 여성의 성을 매매해서라도 경제의 확실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국의 경제 정책 총괄자 이 헌재 부총리의 심각한 몰상식적 망언이 잇다랐다.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이러한 발언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공격적으로 공개 석상에서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일부 타락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잘못된 생각이 아님을 보여 준다. 상당수 성인 남성들의 인식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다수 남성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자신했기에 이를 믿고 과감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대적점에 있어야 할 진보 진영은 너무나도 무지하고 무관심했으며 따라서 무력했다. 아예 최근에는 성매매 금지법이란 아예 국가에 의한 노동자 탄압, 국가의 자기 윤리 강요, 그리고 심지어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자 분리 정책이라는 극단적으로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매매 금지법이란 빈곤층 출신 여성들의 생존권 개념도 모르는 유학파 먹물 엘리트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적인 법에 불과하며, 이 법은 기독교적 금욕주의 혹은 도덕주의적 가치관 하에서 만들어진 법으로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저해하려는 시도에 불과하기에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심지어 성매매 종사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시민’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라고 말하며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시민권’ 회복 차원에서 이들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저항 세력으로 지지 엄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성매매 여성들은 ‘성 노동자’이기에 노동법과 의료 혜택을 공식적으로 받는 ‘합법화’를 통해야만 폭력과 갈취로부터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결론을 공통적으로 내리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온 라인 상에서뿐 아니라 현실 운동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상당수이다. 성매매 문제 이외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뛰어난 지식과 작문 능력을 바탕으로 좌파적 관점과 민중의 입장에서 사안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싸워 나가자고 하던 이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들이 유독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극단적으로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직업 운동가도 아니며 사회 운동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특정 사회 계급이나 계층, 집단을 역사 변화의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에 의한 사회 변혁이라는 이상을 버리고 난 후에는 심지어 그러한 계급, 계층, 집단 내에서도 소외 받고 억압 받으며 물질적으로도 저열한 상태에 놓인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져 왔다. 즉 사회 변혁과는 별로 상관 없지만 빈곤과 불평등, 양극화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는 사회 집단의 현실을 고민해 왔던 것이다. 성매매 문제를 성매매 자체로 보지 말고, ‘생물학적 여성’의 문제로 보기 이전에 억압과 차별과 빈곤과 소외와 불평등의 문제로 보면 절대로 그러한 관념과 사변에 찌들린 주장을 할 수 없다.
성매매가 노동인지 아닌지에 대해 머리 속에서만 그리는 것이 어찌 변혁 운동가의 자세인가? 만일 그들 중 자신의 부인이나 딸, 주변 친지들에게 자신있게 권하는 인간이 있다면 난 그를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지 못 할 위인이라면 제발 그 입을 그만 다물라. 세상에 설사 하룻밤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섹스를 매일 해야 하는 일만큼 비인권적인 것이 어디 있나?
먼저 성매매 문제를 다룸에 있어 모든 문제를 ‘판매되지 않는 것이 없는 체제’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그 어느 것보다 노골적인 여성의 상품화와 성매매는 불가분이기 때문에 체제 자체를 변혁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은 공상 소설의 영역이기 떄문에 문제 의식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므로 일단 제외한다.
진정으로 사회 변혁을 위해 싸우고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라면 성매매를 둘러싼 문제에서 성매매 그 자체만을 두고 관념의 유희를 할 수는 없다. 성매매가 사회적 맥락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단순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 남녀의 성교’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자발적이고 대가가 지불되었을 경우 그저 ‘노동에 대한 대가’이고 여타의 서비스처럼 ‘서비스 혜택’을 받은 상행위에 불과한 것인가? 특히 극단적으로 성차별적이고 여성 모멸적인 한국적 성매매 현실에서 전체 성매매 산업의 단 단위 퍼센트도 차지하지 않는 집창촌에서의 ‘직접 성매매’만을 떠올리며 성교 행위만을 두고 마치 성행위란 자연스러운 것인데 국가가 간섭을 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한국 여성들이 처해진 현실을 잘 아는 진보 운동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추상적인 논의를 우선적으로 한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어찌 성매매 문제가 성매매만의 문제인가? 성매매 그 행위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분석의 대상인가? 성매매를 둘러 싼 혹은 성매매에 이르기까지의 불평등한 사회 관계와 극단적인 여성 비하적 남성 성욕중심주의적 사회 구조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성매매 자체 혹은 성매매에서 성행위만 떼어 내어 왈가왈부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실제로 심지어 과학적 운동을 한다는 이들 중에 성적 자유와 성의 구매와 판매 행위를 혼동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성매매를 일종의 계약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엇이든지 판매되는 사회에서 그 노동이 다른 노동과 무슨 질적인 차이가 있느냐는 지독히 관념적인 반여성적인 이들도 있다. 시장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는 사람들이 유독 이 문제에서만큼은 아주 극단적인 자유주의적 시장주의자의 입장에서 서 있음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는 쌀 개방에 반대해서도 안 되고 비정규직이 고용의 주 형태로 되어 가는 것도 저지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의 의도 자체라기 보다는 그러한 의도와는 상관없는 자본주의의 질적인 변화에 따른 고용 형태와 직업의 변화이며 계급 구조의 변화이기 떄문이다. (물론 자본은 그러한 상황을 절대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만…) 왜 이들은 이렇게 시장의 폭력에 맞서 싸우면서도 인간 문제에 있어서는 지극히 자유주의적이고 극단적 시장주의적 논리만을 앞세우는가?
많은 진보 운동 진영의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가 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세계는 사고 파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진보 운동을 하는 우리들은 시장이 가져 오는 횡포와 폭력에 저항하는 것을 그 어느 것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이기 떄문에…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은 사고 파는 존재가 되었지만 적어도 그 조건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싸워 왔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이들은 인간을 특정 집단의 독점적 쾌락을 위해 상품으로 사고 파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인권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인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난 교육이나 의료보다 인간이 그것도 여성이 마구 유린되어 가며 팔리는 게 더 걱정스럽다. 그것도 아주 일방적이고 모멸적으로.
이들 중 상당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화두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어찌 이러한 이들이 세계화 과정에서의 세계적 차원의 ‘빈곤의 여성화’ 현상을 보지 않고 성매매 합법화를 논하고 성매매 특별법을 저주하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합법화된 나라에서의 상황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비판 의식 없이 마치 합법화만이 인권을 위하는 것인 양 강변하는 모습들이다.
네덜란드 등 일부 합법화된 국가들에서 이러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구 사회주의권이나 구 식민지 출신 빈곤 여성들, 인신 매매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진다. 합법화되지 않은 부분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 산업의 성격 상 많은 합법 업주들이 뒤에서 몰래 비합법적 성매매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현실은 고려에도 없다. 아니 이러한 실제 상황을 모르고 논리의 전개 순서에 따라 자신의 주장만을 강변한다.
이들 국가에서 여성들의 보호의 목적 이외, 성매매 산업의 축소를 의도하기도 한 합법화가 정 반대로 더욱 성산업의 확대를 가져 온 사실은 언급도 없다. 정말이지 성매매 합법화가 폭력과 갈취, 협박을 막는 길이라는 사람들은 합법화 된 국가들에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분석하고 주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일부 인자들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국가의 여성 분할 음모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 것을 기억한다. 심지어 국가 보안법과 성매매 방지법을 비교하며 국가가 강제한 국가가 요구하는 사회적 의식 통제라는 측면에서 같은 질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 비약적 주장도 기억한다. 심지어 돈으로 팔려 가는 결혼과 성매매가 무슨 차이가 있냐면서 거품을 무는 어설픈 엥겔스 책 탐독자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법 집행의 결과로 경찰력만이 증가하여 국가가 사회를 통제하는 데 용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성매매 특별법을 계기로 성매매 특별법 그 자체나 성매매 자체가 아니라 편견과 궤변으로 가득한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다양다기한 남성 성욕중심적 여론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이 문제는 국가라는 주체의 문제와는 상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나 역시 국가의 의도에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성매매, 아니 여성 차별적, 모멸적 성 문화에 대해서만큼은 국가의 의도 분석 자체에 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수 천년을 세뇌당해 온 남성성욕 중심 사회의 대변혁을 가져 올 수 있다면 러시아 1차 혁명 시의 정부 간첩 가퐁의 역할과 같은 것도 활용하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기 떄문이다.
단도 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다. 나는 심지어 성매매가 전혀 없더라도 여자를 끼고 주물러야 술 맛이 나고 내 돈 내가 주고 만지고 주무른다는 데 무슨 방해냐는 한국식 남성 성욕 중심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한국의 성매매 산업, 형태에 반대한다. 하물며 성매매와 관련되어서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성폭력과 성매매는 동일한 현상의 양면이다. 성매매 할 곳이 없어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쉽게 할 수 있기 떄문에 성매매도 늘어 나는 것이다. 150만 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있는 대한민국은 성폭력과 성범죄에 있어 여전히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일부 남성들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기업 등에 의해 조직적이고 공공연하게 성 접대를 포함한 접대가 구조화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진보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세계적으로 발전은 불균형하게 이루어지며 의식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을 너무나도 쉽게 간과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어찌 동성연애자들이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대규모 시가 행진, 축제를 할 수 있는 나라와 여성이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면 아직도 생면부지의 남자가 와서 욕을 해 대는 나라, 그리고 아직도 여성들은 외출 시 뭔가를 쓰고 나가야 되는 나라에서의 상황을 무시한 채 논지를 펼 수 있을까? 물론 보편적이 일반적인 인권과 인류의 발전 방향과 내용은 존재한다. 또한 언제나 해당 지역 사회의 룰에만 머물 수는 없다. 인류 보편적 진보를 위해 늘 선도적으로 그 내용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임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찌꺼기를 마구 배설할 이유는 없다.
비현실적 주장 역시 한탄스러운 수준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그래서 전공노는 그렇게 탄압을 받았나? 시민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은 제대로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 권리로 역할하고 있는가? 마치 합법화가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양 공상하는 이들이 현실에 발을 딛고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본론과는 상관없이 주구장창 성적 자유에 대한 강의를 늘어 놓다가 은근슬쩍 성매매도 이와 별 질적 차이가 없는 듯한 주장으로 넘어가곤 한다.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성매매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 극단적 성차별적, 여성 모멸적 ‘행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없이 그저 ‘수많은 노동의 형태’ 중의 하나로 주장하기 위해 그보다 더 열악한 노동의 예를 들며 ‘질적인 차이 없음’을 강변한다. 나는 솔직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직업으로 노동자로 명명하든 뭐든 상관하지 않는다. 어떻게 규정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비과학적 추상적 관념일 뿐이니까.
무슨 구멍 가게 주인 같은 업주라는 단어를 분석 없이 그저 베껴 써 대는 것도 황당하다. 폭력 조직과 같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들이 특별한 노동없이 막대한 이윤을 받아 먹고 기생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성매매 산업 관련 부분이다. 어떤 이는 업주들이 의외로 보통 사람 같은 인상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그 어느 누구도 인간 자체를 미워해서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무리 마하트마 간디라도 그가 이라크 주둔 미국 군대에 복무한다면 그는 인간 간디가 아니라 미 점령군 군대의 군인일 뿐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무슨 이유에서든 성매매 산업에 뛰어 들어 여성들을 팔아 이익을 남겨 먹는다면 그는 성인 간디가 아니라 범죄자 업주일 뿐인 것이다.
사실 관계에 대한 왜곡과 단정은 더욱 심각하다. 성녀- 창녀의 개념 구별, 피해자 개념은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 150만이라는 여성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창피한 것이라고 했다는 것도 엉뚱하게 결국 그 여성들이 창피한 존재라고 하는 것이라는 결론은 도무지 어떤 머리 속에서 나온 건지 정말 궁금하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자살 테러를 감행해 오는 것을 보고 있다.전후 맥락, 주변 분석 없이 보자면 한 마디로 이는 일말의 동정도 살 수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반인간적 테러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세계 활동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잔학무도한 테러보다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일까?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 민간인 테러를 옹호라도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한 잔인하고 무모한 투쟁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는 그 근본 원인에 더욱 문제를 제기하기 떄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비판에 일차적으로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성매매 문제 역시 본질은 같다.. 여성의 빈곤, 일정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이들조차 자신을 실현하기 힘든 사회, 하물며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과 학력이 없거나 청소년기 일시적인 충동으로 그러한 기능을 갖추지 못 한 여성들을 무서운 힘으로 빨아 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도처에 널린 남성 성욕 중심 사회를 문제제기하고 변혁하는 일보다 진보 진영에게 더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자발적 성매매 여성 발생의 사회 구조적 맥락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운동을 한다면서도 인간과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관념론적 운동가들의 심각한 자화상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오랜 동안 사형수들의 마지막을 지켜봐 온 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분이 한 말이 있다. 단 한명의 억울한 사형수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생명과 인권 차원에서도 자신은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단 한 명의 강제적 노예적 상태의 성매매가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위해 싸워야 한다. 성매매 문제에 있어 자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극히 일부가 반강제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 운동하는 이들이 이를 무시하고 대다수가 자발적이기 때문에 운운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100% 자발적이라 할지라도 업주의 협박이나 선불금 따위의 강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성매매 산업을 반대한다. 위에서도 누차 강조했듯이 특히 남한에서의 성매매는 성매매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합법화된 업소에서의 종사자가 만 단위도 안 되는 지역과 150만이 넘는 국가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성매매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여성이 남성의 출세와 성공과 인맥 만들기, 그리고 성욕을 풀기 위해서 철저하게 일방적인 도구가 되어 구조화된 우리 나라 성매매 관련 조직/산업/문화와 단순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사업비의 일부분으로 공식적 접대비가 나와 성매매가 포함된 접대를 공공연하게 대규모적으로 구조적으로 하는 우리네 상황이 어찌 성행위 그 자체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몇몇 진보인사들의 착각 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이며 여성에 대한 죄악이다.
마약, 전쟁, 핵무기 개발, 강도 등 각종 범죄 등 금지해도 쉽게 금지가 되지 않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들이 유독 이 문제에서 만큼은 당장에 점성술사나 초능력자가 되어 결과를 예측하기를 바란다. 단 한 번도 역사에서 근절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완전히 근절하지 못 할 건데 왜 우리는 전쟁 반대를 외치나? 왜 강도범을 잡아 넣는가?
혹자는 성매매를 식욕이나 배설욕 등 여타의 욕구와 비교하기도 한다. 혹은 사고 싶은 옷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현상을 왜 막냐는 건데 사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훔쳐서도 안되고 돈이 없을 때 자제하는 것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이다. 소변이 급하다고 대로에서 일을 보지 않고 참고 장소를 찾는 것이 그리도 이상한 건가?
진정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의도에 저항하려 한다면 오히려 정 반대로 국가가 합법화로 성산업에서 획득하는 불법적 비생산적 이익에 저항하여야 하거늘 도대체 지배자들에게 무슨 놈의 이론적 바탕들을 대 주고 있는지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국가의 불순한 의도를 지적하고 싶다면 성산업의 합법적 확대로 여성의 하위 계층, 그리고 빈곤한 국가 출신의 빈곤한 제 3세계, 주변부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끝없이 합법적 블랙홀로 빠져 들게 하고 있는 그 국가의 의도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 성매매 산업의 단 단위 퍼센트도 안 되는 집창촌에서의 성매매가 아니라 가진자들과 지배자들이 즐겨 찾는 고급 룸살롱이나 요정 등에서의 성매매를 집요하게 단속하지 않는 국가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데 정력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은 현재 러시아에서 한인들에 의한 성매매 조직/산업/문화에 대해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 러시아 성매매 문제에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아 거기에까지는 미치지 못 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일부 진보 관념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은 구태의연한 도덕 운동, 종교적 금욕주의, 그리고 여성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반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 말대로 하자면 성매매 반대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네 보다 훨씬 생존권 문제가 심각한 여성들을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에게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해 달라는 성매매 합법화 운동을 해야 되는 것인가? 그리고 노동으로 인정받은 뒤에는 더 나은 조건을 위해 노동 이주의 자유를 달라고 주장해서 이 곳보다는 나은 대한민국으로 자유롭게 들어 와 이주 노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성욕을 가지고 있다. 단지 수 천년 동안의 교육과 세뇌 탓으로 여성의 성욕 논의는 금기시되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여성은 왜 남성을 사는 이들이 거의 없는가? 이에 대한 답만으로도 우리는 현실에서의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성 권력의 관계를 가늠하고도 남을 것이다. 적어도 현대 성 산업 관계에서 설사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을 할 수 있을 지라도 결단코 그들의 고용주로부터 그녀들은 자유롭지 못 할 것이다. 또한 성의 특성 상 해괴한 상품을 만들어 내고 팔으라는 남성 구매자들의 요구는 한도 없이 확대될 것이다.
성은 성스러운 것도 아니고 창피한 것도 아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팔고 사는 것이 되고 그 과정에 권력이 개입한다면 이는 성적 자유나 성 개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교정과 수정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성매매 특별법의 근본 정신 역시 그 어느 쪽도 아니다. 도리어 그러한 이분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보주의자라 자처하는 일부 관념론자들일 뿐이다. 종교적 도덕적 금욕주의의 혐의를 씌운다거나 정 반대로 성매매 여성들을 천하게 여기어서 차별하는 것이라 억측하고 강변하는 일부 관념론적 진보주의자들의 사변적 궤변에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진보적이라 자청하는 이들이 성 노동자로 칭하든 그들이 성매매 여성들의 자율적인 운동을 지지하든 그들의 관념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일부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뭐라고 규정을 하든 수많은 남성 성구매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을 비웃으며 오늘도 그들의 배설을 위해 성매매 여성들을 '하수구'로 대할 것이다. 팩트는 똑같은데 지칭하는 게 달라진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일부 자칭 진보주의자들이여! 제발 자신의 딸이 아니고 부인이 아니고 어머니가 아니라고 머리만 굴려 거대한 진보의 흐름을 막지 말아라.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국가가 빈곤 여성의 생존권을 공격한다는 따위의 공허한 궤변이 아니라, 국내에서 조금 성매매가 줄었다고 해외로 원정 성매매를 떠나는 가진 자들과 성권력 수호자들의 국제적 범죄를 묵인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에 문제 제기하고, 지배자들의 성 향유 구조는 증거가 불충분하기에 단속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식으로 그다지 단속에 관심이 없는 국가의 말 그대로의 ‘이중적 행위’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극단적 여성 차별적 사회 구조와 인식, 그리고 여성을 남성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지배자들과 부자들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길이다.수 천년 간의 세뇌되고 왜곡된 문제의 교정 과정은 험난할 수 밖에 없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 제발 그 현상 자체만으로 관념의 유희를 즐기는 일이 앞으로는 없기를 진심으로 진보주의자라 자칭하는 이들에게 간곡히 요청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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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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